[발언대] "축산업 구제역등 최악상황 철저대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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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가상상황을 놓고 미리 그 대응책을 마련하는 이른바 '시나리오 경영' 은 이제 더이상 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선진국들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 주요정책에 대해서는 철저한 시나리오 경영을 해오고 있다.

시나리오 경영은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행동 방향과 그 강도를 심층적인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예측하기 때문에 국가의 주요 정책을 변화 가능한 역동적인 대안을 갖고 설계할 수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 경영은 국가정책의 모든 영역에서 필요하겠지만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미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한국 축산업에 대해서다.

현재 한국 축산업은 다음 두 가지의 악조건 아래 최악의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첫번째는 지난 3월 말 발생한 구제역으로 육류수출이 전면 중단됨에 따라 야기된 상황이다.

이웃 대만에서는 구제역으로 발생 원년에 최소한 9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으며 5년에 걸쳐 손실이 무려 42조원에 달했다는 보고까지 나와 있어 구제역이 주는 경제손실 규모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경우 이미 올해 예정된 대일(對日) 돈육 수출에서만 3천여억원의 차질이 발생했지만 그보다 양국간의 선호 부위 차이에 따른 대일 돈육 수출의 시너지 효과를 고려할 때 그 물량은 사육 마리수의 35%에 해당될 정도여서 양돈 농가의 피해는 연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두번째는 내년 1월로 확정된 쇠고기 수입 전면 자유화에 따른 문제점이다.

우리보다 먼저 수입 자유화를 시행한 일본도 사실상 수입제한조치인 SSG(Special Safe Guard)제도의 확보와 11만t 완충 재고의 적극적인 활용에도 불구하고 수입개방 후 쇠고기 자급률이 50%대에서 35%까지 급락하고 산지가격도 33.3%에서 최고 48%까지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우리의 경우는 아무런 보완 장치가 없는 만큼 쇠고기 자급률은 30%대로 급락하고 산지 소값의 대규모 폭락이 예상된다.

따라서 구제역 발생으로 인한 수출 중단과 쇠고기 수입 자유화에 따른 예상 피해는 최소 연 2조원을 상회하는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이 정도의 경제적 손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축산 생산기반이 서서히 붕괴해 이미 수조원이 투자된 축산 인프라 구축 비용이나 유통 현대화 노력이 유실될 가능성이 크고 농업에 대한 다원적 기능을 일시에 상실할 우려가 높다.

선진국에서도 먹을 거리 문제만큼은 자유무역 개념을 초월해 지구 공동체의 공존공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일본도 먹을 거리 문제는 '국민이 납득하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하는 것' 을 국가의 기본 책무로 규정하고 먹을 거리의 국내 공급력(자급률)을 높이는 것을 주요 실천 임무로 설정해 자국 축산업 보호 및 육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미 양축농가가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 우리 실정이라면 정부 당국자들은 예상되는 상황을 치밀하게 분석해 그에 따른 대응방안 마련에 철저를 기해야 한다.

따라서 구제역 발생과 축산물 수입 완전 자유화에 대비한 정부의 축산업 시나리오 경영은 더욱 더 그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축산업에 관한 시나리오 국가경영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공적기능 수행기관은 그래서 필요하고 그 설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심기섭 <한국냉장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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