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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수 전 전경련 전무 기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재계의 입' 으로 불려온 유한수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가 8일 전경련을 떠나면서 중앙일보에 소회를 밝혔다.

재계의 386세대가 모여 만든 금융 지주회사인 CBF금융그룹 대표로 옮겨가는 그는 이 글에 2년 동안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느낀 아쉬움과 앞으로의 기대를 담았다.

40년 역사를 가진 조직에 불과 2년 근무하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무례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2년이 재벌개혁의 하이라이트적 기간이었다면 몇마디 하는 것쯤은 허용될 것으로 생각한다.

전경련을 떠나며 안타까운 것은 전경련 위기론이나 해체론이 심상치 않게 거론된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전경련이 약화되어 회원사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전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경련은 4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단체이며 그동안 쌓은 데이터베이스나 노하우가 대단한 단체다.

최근 회장단 회의에 참석률이 저조하다는 지적도 있으나 오너 경영자들의 전경련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다.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전경련이라는 이름을 바꾸자는 말에 펄쩍 뛸 정도로 조직에 대한 애착이 크다.

오너들의 애착이 클수록 다른 쪽 사람들의 반감도 크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전경련을 해체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전경련이 시민단체더러 해체하라고 요구하지 않듯이 시민단체들도 그런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

전경련이 약해진 듯이 보이는 데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전경련을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저항단체로 인식해 조용해줄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은 회원사의 이익을 지키며 정부에 대해 정책 건의를 하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다.

정부와 경제단체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충분히 협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부가 우월하다고 믿으면 협의는 불가능하며 이견 제시는 정부에 대한 저항이라고 간주된다.

관치경제의 유습이 남아있는 것도 정.재계의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30년 이상 관료로 성장한 분들이라면 과거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이던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일이 잘 안풀릴 때는 압력을 가해서라도 성사시키고 싶은 마음이 왜 안들겠는가.

실제로 고위 당국자들은 전경련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해주시오" 혹은 "아무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등 압력성 의사전달을 한다. 그래놓고는 그런 사실이 보도되면 절대로 개입한 적 없다고 펄쩍 뛴다.

정부 정책이 일방 통행적으로 집행된다면 시장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해 시행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부작용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각국 정부는 민간단체의 의견을 열심히 들어보는 것이다.

경제단체가 약화되면 전경련 측에서도 책임질 부분이 있다. 원로 중심, 오너 중심으로 된 지배구조의 경직성은 문제다.

회원사 모두가 무언가 고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혁에는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해서는 전문경영인이나 젊은 2세 경영자들을 폭넓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각종 위원회를 신설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으나 지배구조의 혁신 없이는 근본적 해결이 안될 것 같다.

대정부 관계에 있어서 항상 정부의 공세에 대해 방어 위주로만 나갔던 것도 전략적으로는 옳지 않았다고 본다. 대세를 알고 어차피 받아야 할 것은 과감하게 수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전경련은 기본적으로 경제단체이기 때문에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개혁을 지속하면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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