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내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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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대표작 ‘오네긴’에서 주역을 맡은 강수진(右)이 감성적인 몸짓으로 열연하고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2년 만에 내한한다. 오는 25~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네긴'을 올린다. '오네긴'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대표작. '드라마틱 발레의 완성'이란 찬사에도 불구하고 국내 관객들에겐 다소 생소한 작품이다.

이유가 있다. '오네긴'은 슈투트가르트를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성장시킨 존 크랑코(1927~73)의 안무작. 그래서 판권이 존 크랑코 재단에 있다. 한때는 세계를 통틀어 '오네긴'을 공연할 수 있는 발레단이 딱 두 군데밖에 없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바이에른 주립 발레단. 국내에선 이번이 초연이다.

'오네긴'은 시골 처녀 타티아나와 오만한 사내 오네긴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발레단 수석 무용수인 강수진이 주역 타티아나를 맡는다. 발레리나에겐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시즌 오프닝 주역을 강수진이 처음 맡았던 작품도 '오네긴'(95년)이었다. 당시 독일 언론은 '65년 초연 때 주역을 맡았던 마르시아 하이데 이후 타티아나를 가장 잘 표현한 무용수'라며 극찬을 쏟아 놓았다.

3막 6장으로 구성된 '오네긴'은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식의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 속 사람들의 엇나가는 사랑담이다. 줄거리는 비교적 단조롭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와 외면하는 이, 그들의 심장 밑바닥에서 길어올리는 열정과 감성에 대한 표현력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오네긴'은 무척 드라마틱한 작품이다. 이야기 흐름을 따라 한 발짝씩 옮겨 가는 타티아나와 오네긴의 감정 변화를 찬찬히 씹어보는 재미가 매력이다. 음악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곡 중 28곡을 편곡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오네긴'에 쓰인 음악과는 무관하다.

막이 오르면 19세기 초 러시아 지방 귀족의 정원이 펼쳐진다. 타티아나는 '무엇을 입을까'보다 '무슨 책을 읽을까'에 더욱 관심을 쏟는 아가씨다. 그런 그가 짝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사촌의 약혼자가 데려온 친구 오네긴이다. 1막에선 두 사람의 2인무가 볼거리다. 강수진은 끊임없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다. 그지없이 여리고, 한없이 감성적인 타티아나의 몸짓을 강수진은 절묘하게 드러낸다. 사람의 관절이 아니라 마치 곡선과 곡선의 이음새로 기운 헝겊 인형이 춤을 추는 느낌이다. 2막에선 오네긴과 결투를 벌인 사촌의 약혼자가 총에 맞아 죽는다. 드라마틱 발레답게 비극적인 운명을 절절하게 풀어내는 무용수들의 연기력이 빼어나다.

3막은 몇 년 후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배경이다. 타티아나는 공작의 부인이 된다. 공작의 무도회에 초청받은 오네긴은 타티아나의 아름다움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지난날 자신의 무모함을 뉘우친다. 오네긴은 절박하게 사랑을 갈구하고, 타티아나는 매몰차게 거부한다. 여기서 강수진은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풀어 헤친다. 하나는 원망스러운 운명을 타고 흐르는 슬픔과 그리움, 또 하나는 이를 애써 외면하는 당당함이다. 결국 오네긴은 떠나고 타티아나는 고통에 흐느낀다. 막이 내리면서 엇나감의 슬픔이 해일처럼 객석을 덮친다. 02-399-1114. 5만~20만원.

백성호 기자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러시아의 볼쇼이, 키로프 마린스키, 파리 오페라 발레단과 더불어 세계 정상의 발레단으로 꼽힌다. 1609년에 왕실발레단으로 출발했고, 1961년 영국인 안무가 존 크랑코를 영입하면서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발돋움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오네긴''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고전 작품을 극적으로 해석한 독창적인 레퍼토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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