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그룹 경영전략회의 미룬 김승연 한화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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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3일 오후 1시 서울 장교동의 한화그룹 사옥 28층 대회의실. 한화 계열사 사장단과 경영기획실 임원 등 50여 명의 그룹 수뇌부가 모두 모였다. 올해 그룹의 사업 계획을 확정 짓는 ‘2010 경영전략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회의를 주재할 김승연(58·사진) 회장은 자리에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사장단에 ‘전략회의가 18일로 연기됐다’는 통보가 왔다. 김 회장은 이날 장교동 본사로 출근하지 않았다.

김 회장은 회의를 닷새 뒤로 연기하면서 올해 경영전략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이 투자와 매출 등 신년 경영전략을 다시 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당초 한화는 이날 지난해보다 매출·투자·채용 규모를 10%씩 늘린다는 경영전략을 확정할 예정이었다. 한화의 지난해 전체 매출은 약 33조원이었다. 투자 규모는 약 1조8000억원, 신규 채용은 3300명이었다.

한화는 다음 주 확정하는 올해 경영전략에서 글로벌 경영을 보다 강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화 금춘수(사장) 경영기획실장은 “올해 사업 계획을 보다 심도 있게 재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적극적인 행보는 지난해 이후 ‘달라진 움직임’에서도 읽혀진다. 지난해 2월 경영전략회의에서 김 회장은 “오늘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내일을 연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2011년까지 반드시 글로벌 기업이 될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까지 그룹 전체 매출의 40%를 해외에서 올리겠다는 이른바 ‘그레이트 챌린지 2011’ 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8년 기준 한화의 해외 매출 규모는 전체의 10% 남짓이었다.

지난해 가을 그룹 창립 57주년 기념사에서 “이번 경제위기를 통해 승자가 독식하는 냉혹한 시장 현실을 절감했다. 대외적인 환경이 어렵다고 소극적인 행동으로 투자 적기를 놓치면 경쟁력은 뒤처진다. 쉼 없는 쟁기질만이 봄을 재촉한다”고 독려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신년사에서 “해외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불퇴전의 각오로 시작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회장 스스로 “필요하다면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며 글로벌 영토 확장의 선봉장에 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오대양 육대주의 현장을 발로 뛰겠다는 것이다. 한화 관계자는 “올해는 ‘그레이트 챌린지 2011’으로 가는 중간 연도”라며 “해외 사업과 계열사별 신성장동력의 기틀을 다지는 해로 삼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한화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 시설, 중국 닝보(寧波)에 석유화학 공장을 조성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외 사업을 벌인다. 김 회장은 27일 스위스에서 개최되는 글로벌 리더들의 모임인 다보스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 닝보 공장 준공식도 참석한다. 한편 한화 고위 관계자는 “경영전략회의를 연기한 것은 세종시 입주 문제와는 관련 없다”고 말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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