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즈 로빈슨’ 바람기에 북아일랜드 연정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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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영화 ‘졸업’(1967년) 속 ‘미시즈 로빈슨(Ms.Robinson)’의 불륜이 현실이 된 것인가. 영국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피터 로빈슨(사진 오른쪽) 총리의 부인 아이리스(60·왼쪽)와 스물한 살 청년의 스캔들로 유럽이 떠들썩하다.

영화 속 로빈슨 여사가 딸의 애인인 청년 벤저민(더스틴 호프먼 분)의 마음을 잠시 흔들어놓는 데 그쳤다면, 현실의 로빈슨 여사의 불륜은 북아일랜드 평화를 뒤흔들어놓고 있다. 부인의 스캔들로 로빈슨 총리가 퇴진하면서 북아일랜드 연립정부가 붕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로빈슨 총리는 11일 “아내의 사생활이 공개되면서 제기된 의혹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6주간 총리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알린 포스터 산업 장관이 임시로 그 자리를 맡았다. 로빈슨 총리는 사태의 추이를 살펴본 뒤 복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빈슨 총리의 사퇴로 북아일랜드의 위태로운 평화가 벼랑 끝에 몰렸다.

영국령인 북아일랜드는 2007년 미국(미국에는 아일랜드계가 많다) 중재로 신·구교도 정당이 함께 출범시킨 연립정부가 이끌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경찰·사법권을 넘겨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연립정부의 한 축인 민주연합당(개신교) 대표인 로빈슨 총리가 물러나면서 연립정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놓였다.

사태의 발단은 부인 아이리스가 2008년 3월 친구의 장례식에서 당시 19세였던 커크 맥컴블리(21)를 만나면서부터다. 커크는 고인의 아들이었다. 아이리스는 6일 2년 전 커크와 바람을 피운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가족을 잃은 청년의 사업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 잘못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죄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다고 말했다.

일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이리스가 구 의원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해 2명의 부동산 개발업자로부터 5만 파운드(약 9000만원)를 끌어다 커크의 카페에 투자하도록 했고, 이 과정에서 커크로부터 현금 5000 파운드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추가로 제기됐다. 아이리스는 최근 구 의원직에서 물러났으며,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정신과에 입원했다. 의회는 로빈슨 총리가 아내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알았는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로빈슨 부부는 1970년 결혼해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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