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배아 복제 논란] 배아 복제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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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인간복제기술이 전세계 과학계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 정부가 최근 사상 최초로 치료 목적의 배아(胚芽)연구를 허용했는가 하면 미국도 연방정부의 연구비 지원대상을 정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함으로써 사실상 배아 연구를 허용한 상태다.

우리나라도 이와 관련된 신기술이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부쩍 달아오르고 있는 배아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들을 짚어본다.

불임 전문치료기관인 서울 모병원의 냉동창고엔 섭씨 영하 1백96도의 질소탱크 속에 불임부부들의 난자와 수정란을 담은 그릇 수천개가 빽빽이 들어있다.

이들 모두 시험관아기 시술을 위해 받아놓은 잉여 난자와 수정란으로 환자의 동의 아래 3~5년후 폐기처분된다.

전국 20여개 불임 전문병원에서 이처럼 버려지는 난자와 수정란만 한해 10만여개에 달한다.

이들 모두 시험관 배지에서 적절한 온도와 영양물질을 공급하면 세포분열을 거쳐 배아로 자라며, 이를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키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

연구자들의 고민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 병원 연구원 K박사는 "연구자가 마음만 먹으면 배아의 실험적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한 상태" 라며 "전세계 과학자들도 어디까지 연구를 진행시켜야 할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묵시적으로 허용돼온 실험단계는 심장이나 폐 등 구체적 장기를 형성할 수 있는 간(幹)세포 직전의 배아 단계.

그러나 1998년 미 위스콘신대 연구진이 사상 최초로 간세포 배양에 성공함으로써 금기의 포문을 열었다.

시험관아기 시술후 남은 생(生)배아를 배양해 간세포를 만들어낸 뒤 이를 더 이상 자라지 않도록 분화를 억제하는 기술을 찾아낸 것이다.

심장이나 폐로 자랄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실제 장기는 형성하지 않도록 실험적 조작을 거친 간세포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문제는 수정후 5~6일 지난 살아 있는 배아를 실험대상으로 삼았다는 것. 하지만 최근 마리아산부인과 기초의학연구소 박세필 소장팀이 5년 동안 보관했다 폐기처분될 처지에 있던 냉동배아를 이용해 간세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윤리적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朴소장은 "간세포에서 특정 장기를 만들어내는 세포만 골라내는 기술이 성공한다면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를 이식하듯 배아 은행에서 환자에게 원하는 세포를 대량 공급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 이라고 말했다.

이 방식이 수정란을 이용한 것이라면 서울대수의대 황우석 교수가 지난달 8월 발표한 방식은 체세포 복제기술을 이용한 것. 정자와 난자 대신 사람의 귀에서 피부세포를 떼어내 간세포 직전 단계인 배반포 단계까지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黃교수는 "환자 자신의 몸에서 추출한 세포를 이용하므로 유전적으로 동일해 거부반응이 없는 세포의 생산이 가능하다" 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 간세포까지 배양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데다 생식세포가 아닌 체세포를 이용하므로 인간복제란 윤리적 비판을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黃교수는 "체세포 복제라 할지라도 태반이 될 영양막과 개체가 될 내부 세포덩어리를 분리해 실험하므로 배아가 태아로 자라 복제인간이 탄생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고 말했다.

영국 PPL테라퓨틱스사와 미국 ACT사 등 배아 연구를 전담하는 생명공학 벤처가 급성장하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선 아직 배아 관련 벤처기업은 전무한 상태다.

그러나 M산부인과와 C병원 등 국내 불임 전문병원에서 냉동 배아를 이용한 간세포 배양을 다루는 생명공학 벤처 창업을 준비 중이다.

마리아산부인과 임진호 원장은 "배아 연구를 허용하는 영국과 미국의 최근 조치는 배아 연구의 산업화에 대비한 발빠른 조치" 라며 "국가경쟁력 제고와 윤리적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합리적 가이드라인의 마련이 시급하다" 고 지적했다.

홍혜걸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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