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계열 분리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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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현대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시장 위험이 대폭 줄어들었다. 부실한 부분과 건실한 부분이 마구잡이로 섞일 경우에 유발될 수 있는 동반 부실의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31일 현대자동차 소그룹의 친족분리를 이같이 해석했다. 현대자동차 등 현금흐름이 좋은 우량회사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임을 예상하게 하는 말이다.

현대자동차의 계열분리가 승인돼 업종전문화를 추구하는 정부의 재벌정책이 작은 결실을 봤다. 아울러 5개월에 걸친 현대사태도 시장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현대 계열분리가 결국 성사됨에 따라 다른 재벌들도 사업구조나 조직 개편을 서두를 것으로 전망된다.

◇ 계열분리 의미=현대그룹의 몸집이 줄어들면서 선단식 경영과 차입에 의한 방만한 확장경영을 억제할 수 있게 됐다.

우선 현대자동차 소그룹은 내년 4월 30대 그룹에 새로 지정될 때까지 한시적이나마 상호 채무보증 금지 등 30대 기업집단이 지켜야 하는 갖가지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은행여신도 기존의 현대그룹과는 별도의 주채무계열로 지정받을 수 있을 전망이어서 자금운용에 있어서도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그러나 어차피 현대자동차의 자산규모 등에 비추어 내년도 30대 기업집단에 새로 지정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채무보증을 늘릴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재벌 1세대 때는 선단식 경영을 한다는 비판이 많았으나 2세, 3세로 넘어가면서 소규모 그룹으로 분할되는 게 자연스런 현상" 이라며 현대자동차 계열분리를 환영했다.

정재영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현대그룹의 계열분리는 '우리 대기업들이 독자적인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라' 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 것" 이라며 "그룹 중심에서 기업 중심으로 대기업집단의 경영행태가 빠르게 바뀌어갈 것" 으로 내다봤다.

鄭교수는 "계열분리한 기업들은 과거와 달리 그룹의 지원 등을 받을 수 없게 된 만큼 기술력.자금력.마케팅력 등을 끌어올려 글로벌경쟁에서 생존하는 게 중요하다" 고 덧붙였다.

◇ 향후 과제=공정위 강대형 독점국장은 현대의 계열분리로 현대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계열분리에도 불구하고 현대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오성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대자동차의 계열분리는 시장의 요구를 어느정도 받아들인 것이지만 현대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고 말했다.

그는 "기존 현대그룹의 경우 현금흐름 등 자금사정에 관해서 시장을 더 안심시켜야 하며, 현대자동차도 전문경영인 체제를 시급히 확립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 황인학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한 그룹 내에 다양한 업종의 회사가 모여 그룹 기조실 등의 통제를 받는 바람에 조직 전체의 효율성이 떨어졌던 게 사실" 이라며 "연관산업의 회사끼리 모이면 이런 비효율이 줄어들 것" 이라고 말했다.

이용택.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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