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보증금이 전셋값보다 비싼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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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경기도 판교신도시의 한 민간임대아파트에 사는 최용환(45)씨는 요즘 임대 주체인 시공사를 상대로 보증금 반환소송을 벌이고 있다. 그는 “무주택 서민을 위한 임대 단지인데 보증금이 2억4500만원(전용 84㎡)으로 주변 일반분양 단지 전셋값(2억2000만원 선)보다 비싸다”고 전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화성 동탄신도시에 공급한 분양전환 공공임대 세입자들은 정부에 임대료 인하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낼 계획이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세입자는 “전용 74㎡는 월세가 43만원(보증금 5400만원)인데 수입이 일정치 않은 서민들에게는 부담이 크다”며 “보증금을 더 내더라도 월세를 낮춰 줄 것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무주택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넓혀 주기 위한 분양전환 임대아파트. 임대 의무기간(10년)의 절반만 지나면 분양받을 수 있는 데다 초기에 들어가는 자금 부담이 덜해 인기가 많다. 그런데 요즘 분양전환 임대아파트마다 임대료(보증금+월세) 문제로 세입자와 임대 주체 간 다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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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임대는 보증금이, 공공임대는 월세가 비싸 세입자들이 임대료 인하를 촉구하는 것이다. 판교 민간임대인 대방노블랜드에 사는 강신동(46)씨는 “임대아파트인데 보증금이 주변 전셋값보다 비싼 게 말이 되느냐”며 “무늬만 임대”라고 주장했다. 임대아파트전국회의 이영철 부의장은 “현실적이지 못한 임대 정책으로 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분양전환 임대아파트의 임대료는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정한다. 월세는 건설원가(땅값+표준형 건축비)를 감안해 책정(표준형 임대료)하는데 일부 또는 전부를 보증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주택기금을 받는 공공임대는 건설원가에서 국민주택기금을 뺀 금액까지만 보증금을 올릴 수 있다.

가령 세입자들이 월세(40만원, 보증금은 5664만원) 인하를 주장하고 있는 판교의 한 공공임대 전용 59㎡는 가구당 7500만원의 국민주택기금을 받아 보증금 상한이 5700만원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LH 경기지역본부 관계자는 “표준형 임대료상 71만원이었던 월세를 이미 보증금 상한까지 전환했으므로 더 낮출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지 않는 민간임대는 건설원가의 90%까지 보증금을 매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업체들이 사업비 조기 회수를 위해 보증금을 상한선까지 올려 보증금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업체 사정만을 배려한 민간임대아파트여서 ‘서민 주거 안정’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임대료 산정 방식상 민간은 보증금이, 공공은 월세가 비싸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건설업계는 임대료를 낮추기 위해 땅값을 낮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땅값이 내려가면 건설원가가 싸져 임대료가 낮아진다”며 “임대주택 용지 분양가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대주택에 대한 세금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월세에는 업체들이 내는 재산세 등이 포함된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박사는 “업체에서 국민주택기금을 쓰면 보증금이 낮아지기 때문에 민간건설업체들도 국민주택기금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정일·임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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