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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MD체제 가동 초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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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북한이 워싱턴과 뉴욕을 향해 핵탄두가 탑재된 미사일을 날린다?'톰 클랜시의 소설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현실이 되려면 수많은 기술적.정치적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상식은 말한다. 하지만 일부 미국인들의 묵시록적 상상력은 상식을 초월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염두에 두고 추진해온 미사일방어(MD)체제가 곧 가동에 들어간다. 한반도 북부에서 미 본토를 향해 발사될지 모르는 미사일을 대기권 밖에서 파괴할 용도로 제작된 탄도탄 요격미사일이 지난 7월부터 알래스카 중부 그릴리 기지 지하 발사대에 장착되기 시작했고, 이달 중순이면 6기째 미사일의 배치가 끝난다. 이에 맞춰 백악관은 MD체제의 공식 가동을 명령하는 단추를 누를 예정이다. MD체제 구축은 부시의 2000년 대선 공약사항이었다.

미사일이 제 구실을 할지 현재로선 의문이다. 성능 실험이 제대로 안 끝난 상태에서 무리하게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 산하 담당기관인 미사일방어청(MDA) 스스로 개발의 초기단계임을 인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명중률을 20% 정도로 보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더라도 핵탄두를 장착한 대포동미사일이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수준에 이르려면 아직 넘어야 할 기술적 장애가 많이 남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설사 개발에 성공한다 해도 보유와 사용은 별개 문제다. 미국이 MD체제를 추진하는 이유가 정말 북한 때문이라면 이렇게까지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유진 해비저 전 미 전략사령부 사령관은 MD체제 가동을 "한번도 실험해본 적이 없는 무기를 한번도 실험해본 적이 없는 위협에 맞서 배치하는 꼴"이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미국은 MD체제 개발비로 900억달러를 썼다. 향후 2년간 들어갈 돈만 120억~160억달러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공화당과 방산업계의 군산복합 커넥션이다. 그러나 흘러간 노래 같은 이 얘기로 모든 걸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MD는 기술(technology)이 아니라 신학(theology)이다"라는 샘 넌 전 상원 군사위원장의 말은 함축적이다. 현재 미 행정부에 포진하고 있는 MD체제 신봉자들의 확신은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1998년 의회의 위촉으로 미국이 직면한 미사일 위협에 관한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다. 보고서 발표 직후 실시된 북한의 대포동1호 시험 발사는 그의 우려를 정당화했다. 얼마 전 나온 9.11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가 지적했듯 부시 행정부 출범 당시 미 국가안보 어젠다의 1순위는 알카에다의 테러가 아니라 MD체제였다. 럼즈펠드는 2004년 말 MD체제 가동을 목표로 설정했고, 일정에 맞춰 무리하게 미사일 실전 배치를 강행하고 있다. 기술적 결함은 과감하게 무시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점령에 현재까지 1200억달러를 썼다. 의회에 요청해 놓고 있는 돈까지 다 합하면 2000억달러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를 놓고 미국인들의 견해는 엇갈리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과장됐거나 미국이 개발한 탄도탄 요격미사일이 말대로 무용지물로 드러날 경우 MD체제는 또 하나의 천문학적 낭비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자원 배분의 왜곡은 국가체제의 동요와 국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역사의 진리다. 이라크 침공과 MD체제 개발을 강행한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1등적 지위가 기울기 시작한 시발점으로 미 역사에 남게 될지 모른다.

배명복 순회특파원 <워싱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