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더 정교해진 화면 더 아리송한 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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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9년 전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많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했다. 영화보다 더 정교하고 실감나는 화면, '전뇌''인형사''고스트' 등의 생소한 용어, 로봇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대화. 당시로서는'만화영화'에 대한 일반적 정의를 뛰어넘는 문화충격이었다.

그 후속편이 '이노센스'라는 이름으로 8일 개봉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양대 업체인 '프로덕션 IG'와 '스튜디오 지브리'가 공동으로 제작에 참여해 화제가 됐고, 지난 5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본선 경쟁작에 오른 작품이다. 화면은 전편보다 더욱 치밀해졌다. 2차원과 3차원을 오가는 그림들은 장엄하다는 느낌까지 선사한다. 아시아의 주요 도시를 돌아다니며 포착했다는 배경 화면에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관객이 즐기기에는 한가지 걸림돌이 있다.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안드로이드''고스트 더빙'등의 낯선 단어가 전편보다 더 자주 나온다. 실제와 가상을 혼동시키는 '전뇌 해킹'이라는 개념이 등장해 앞 장면들을 한순간에 허구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대사는 더욱 어렵다. "고독하게 걸으며 사악함은 없고, 바라는 것은 없이 … 숲속의 코끼리처럼"이라는 부처 말씀이 인용되는가 하면, 느닷없이 "사람은 대개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바라거나 살거나 하는 것에 질리지 않는 것이다"는 로망 롤랑의 말이 튀어 나온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대사에 지나치게 신경쓰지 말고 화면을 따라가라"고 조언하지만 사이토 료쿠(齋藤綠雨)등의 일본 작가를 비롯해 공자.막스 베버 등의 경구가 몇 분에 한번 꼴로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줄거리는 전편에 등장했던 테러수사대의 버트가 소녀형 로봇이 주인을 죽이고 자폭한 사건을 맡아 로봇 회사의 음모를 밝혀낸다는 비교적 간단한 내용이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어디인지, 로봇이 인간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고민이 그 과정을 과잉 포장했을 뿐이다. 12세 관람가.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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