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서울국제연극제] 일본 연출가 오타 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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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국내 공연예술축제를 대표하는 서울국제연극제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50일간 대학로를 중심으로 40여개 작품을 한꺼번에 올리는 일이나, 조셉 나주와 에뮈타스 니코시우스 등 해외 유명 연출가들의 워크숍을 여는 것도 다른 연극제에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적인 연출가들과 우리 연극인들의 만남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고전작품의 독특한 해석으로 정평이 난 다니엘 마스기슈(48),이미지연극으로 연극계에 대변혁을 일으킨 로버트 윌슨(59),침묵극의 창시자 오타 쇼고(61). 올해 서울연극제 무대에 나란히 작품을 올리는 이들은 공교롭게도 외국배우들과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타는 그간 대사가 전혀 없는 침묵극에 남명열씨를 비롯한 몇몇 외국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적은 있지만 외국 배우에게 외국어로 대사를 읊게 하는 작업은 이번이 첫 시도다.

"사라치에 출연하는 남명열씨와는 5년전 '물의 역Ⅱ' 에서 함께 작업한 적이 있고 8월초 일찌감치 한국에 와 호흡을 맞춰 불안감은 없습니다."

한국말을 전혀 몰라도 연습 도중 대사가 극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그때 다른 단어로 바꿀 정도로 한국어에 익숙해졌다는 설명이다.

사라치는 한 쌍의 부부가 해체공사를 마친 옛 집터에서 아무렇게나 버려진 변기와 창틀.기둥을 바라보며 옛 기억들을 더듬어낸다는 이야기. 일본 특유의 서민적인 따뜻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교토조형예술대학교 교수로도 활동중인 그는 77년 '코마치후덴(小町風傳)' 을 시작으로 대사가 없는 침묵극을 만들어내 연극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물의 역.바람의 역.땅의 역.모래의 역 등 역(驛)시리즈로 '침묵극' 이라는 현대극의 한 장르를 완성했고, 88년 서울 올림픽때 처음 한국에 진출했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미국.싱가포르 등지의 무대로도 활동영역을 넓혔다.

"서양의 벽을 뚫는 데는 2년이 걸렸다" 고 할 정도로 유럽인들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랜 침묵과 매우 느린 사실적인 동작들에 대한 이질감 때문이었다고 오타는 말했다. "왜 침묵이냐" 는 질문에는 "대사 위주인 연극의 틀을 깨기 위해서" 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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