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20%의 알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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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간의 알몸 자체를 시각화한 '누드' 가 예술용어로 등장한 것은 18세기 초. 그러나 인간의 벗은 몸은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에서부터 나타난다.

특히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최고의 신인 제우스,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까지도 알몸으로 세웠다.

젊음과 건강, 그리고 아름다움의 이상으로서. 그러나 중세에 인간의 몸은 영혼의 그릇 정도로 비하돼오다 르네상스와 더불어 차츰 벗겨지다 사진의 등장과 함께 19세기 본격적인 예술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도 포르노그라피에 가까운 춘화(春畵)의 원시 형태는 다산을 위한 한 제의적 표현으로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신라.고려를 거쳐 조선 후기 신윤복(申潤福)에 이르면 반쯤 가린 건강한 젖가슴 등 누드에 근접하게 된다.

1916년 두 여인의 목욕 장면을 그린 김관호(金觀鎬)가 우리나라 최초의 누드 화가로 기록되고 그 뒤를 여성화가 나혜석(羅惠錫)이 이었다.

당대 최고의 자유여성이었음에도 28년 그녀가 그린 '나부' 에 의자에 비스듬히 앉힌 여인의 앞모습은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술.사진 할 것없이 2차대전 전까지의 알몸은 안개나 달빛, 꽃과 침대 장막에 수줍게, 교양적으로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후 알몸은 캔버스나 카메라 앞에 전일적인 주체로서 당당하게 나섰다. 붓이나 카메라는 그런 알몸 구석구석의 뉘앙스를 있는 그대로 탐사하기 시작했다. 도덕과 윤리, 이상적 미까지도 일단 판단 보류하고 알몸 자체를 새롭게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세기 초.중반에 후설과 바슐라르 등에 의해 정신과 상상력을 해방시킨 현상학은 후반 들어 메를로퐁티에 이르러 몸을 해방시킨 몸의 현상학으로 발전하며 세계의 학.예술계는 지금 활발하게 몸을 탐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탤런트 김희선씨와 출판사 김영사 사이에 사진집 출간을 놓고 요즘 불거지고 있는 논란이 누드의 발전사를 되뇌게한다.

'전라가 전체의 20%를 넘지 않아야 하며' 라는 계약이 논란의 한 핵심. 선정성에 따를 명예훼손이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선정성 여부는 전라든 아니든 그 제작자의 의도와 감상자에 달려 있다. 옷을 걸쳤어도 보기에 차마 민망할 수도, 알몸이어도 시적 감흥을 자아낼 수도 있다. 문제는 알몸이 우리 사회 제도나 체면 등 다른 것에 여전히 갇혀 있다는 것이다. 끝없는 팬터지를 불러일으킬 알몸를 떳떳하게 감상하고 싶다.

이경철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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