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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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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레고리 헨더슨(1922∼88)은 한국전쟁 전후 주한 미국대사관에 근무했다. 동양문화에 밝았던 그는 한국 문화재에 심취해 수집을 했다. 그런데 그 양이 좀 많았다. 63년 귀국할 때까지 6년간 300여 점을 모았다. 도자기가 주를 이뤘다. 시시한 도자기가 아니었다. 1세기 토기부터 가야·신라 토기, 고려청자, 조선백자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망라한 최고급 수준이었다. 전국의 골동품상들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물건을 바리바리 싸들고 헨더슨의 집을 드나들었다. 그의 집 서재에는 안평대군 글씨가, 거실 벽난로 위에는 고려 탱화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헨더슨이 죽자 아내는 하버드대 부설 박물관에 도자기 150여 점을 넘겼다.

‘헨더슨 컬렉션’을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전후 혼란 통에 사라질 위기에 있었던 우리 문화재를 예술애호가가 지켜줬다는 게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외교관 지위를 이용, 많은 양의 문화재를 자기 나라로 싸들고 간 그의 행위를 문화적 도둑질로 보는 것이다(김경임,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헨더슨 컬렉션이 만들어졌을 당시 문화재 반출 기준은 턱없이 허술했다. 62년 문화재보호법이 생겼지만 지정 문화재가 해외로 반출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주인 손을 한 번 떠난 물건이 저절로 돌아오길 기대하긴 어렵다. 남의 컬렉션을 장물로 주장해 되찾아오려면 어지간한 꾀론 안 된다. 2007년 미국 폴 게티 박물관은 아프로디테상 등 간판 소장품이 포함된 고미술품 40점을 이탈리아에 돌려줬다. 도굴과 밀거래 등 불법경로로 박물관에 흘러들어 갔다는 주장에 굴복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20년 넘게 근무해온 게티 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를 장물 거래 혐의로 법정에 세워 톡톡히 망신을 줬다. 담당 검사는 “박물관 수장고를 텅텅 비게 만들 증거가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문화부 장관도 나서 문화 교류를 끊겠다며 압박했다. 전방위 공세에 박물관은 백기를 들었다.

이탈리아가 게티 박물관을 ‘도둑’ 취급만 한 건 아니다. 유물은 되돌려받되 비슷한 가치를 지닌 다른 유물을 장기 대여해줬다. 국제적 이목을 집중시킨 강온 양면술이었다. 혼쭐난 게티 박물관은 같은 해 그리스가 황금화관을 돌려 달라고 하자 두말 없이 내줬다. 최근 프랑스가 갖고 있는 외규장각 의궤 반환이 다시 한번 좌초됐다. 우리 정부는 물밑에서 어떤 야무진 전략전술을 구사하고 있으려나. 

기선민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