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예능도 드라마도 두렵지 않다’ 당찬 국악 걸 그룹 미지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 국악팀은 200개가 넘는다. 하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팀은 찾기가 쉽지 않다.

국악 걸 그룹 ‘미지(MIJI)’가 그 벽 허물기에 도전한다. ‘국악계의 소녀시대’라는 발칙한 발상으로 미지(未知)의 영역을 헤쳐나가겠다고 한다. 멤버는 8명이다. 남지인(29·대금,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재학), 신자용(28·소금·대금, 이화여대 음악대학원 재학), 신희선(24·피리·생황,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졸업), 이영현(26·가야금,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재학), 진보람(22·가야금, 중앙대 국악관현악과 재학), 이경현(28·해금, 용인대 예술대학원 졸업), 박지혜(28·해금, 추계예대 국악과 졸업), 김보성(22·보컬, 중앙대 음악극과 재학). 모두 7명의 국악기 연주자와 1명의 국악 보컬로 구성됐다. 그들은 14일 12곡이 담긴 첫 앨범을 발표한다.

14일 첫 앨범 ‘The Challenge’ 발매
미지 멤버의 선발 과정은 요즘 유행하는 걸 그룹과 닮았다. 2008년 8월부터 세 차례의 오디션을 거쳤다. 같은 해 9월에 열린 마지막 오디션은 2박3일간의 혹독한 합숙 과정으로 치러졌다. 국악 연주 솜씨뿐 아니라 연기·춤도 심사 대상이었다. 단순히 국악에 능한 이들이 아니라 만능 엔터테이너(Entertainer)를 뽑겠다는 욕심에서다. 선발된 멤버들은 앨범이 나오기까지 1년5개월간 연습하고 호흡을 맞췄다. 악기 연주 연습은 기본이었고 헬스와 수영으로 몸을 다지고 외국어도 배웠다. 헬스를 하면서 허리둘레는 물론 체지방 수치를 잴 정도로 관리는 엄격했다. 인터넷을 즐기는 시간도 제한했다. 이미지 메이킹과 스타일링을 위해선 최고 전문가들이 가세했다. 연기 지도는 영화배우 배두나씨의 어머니이자 연극배우인 김화영씨가 맡았다. ‘소녀시대’처럼 음악 순위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TV드라마에도 출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은 대중성 있는 국악 걸 그룹을 탄생시키기 위한 프로젝트 차원에서 진행됐다. 음반 기획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고 문화관광부가 후원한 전통예술 스타 프로젝트였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국악 그룹을 통해 우리 것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11월 한국에서 개최되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외국 정상들에게 ‘미지’의 음악을 소개한다는 구상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11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미지’를 통한 우리 것 알리기 방안이 보고되기도 했다.

몸매 관리 위해 헬스·수영도
멤버들은 성숙한 분위기가 나면서도 발랄했다. 복도를 걷다가 낯선 사람을 만나도 “안녕하세요”라고 저마다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8명의 소리가 또렷하고 하나처럼 들린다. 사진 촬영을 위한 움직임도 일사불란했다.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고 셔터 소리가 들릴 때마다 표정도 따라 변했다.

걸 그룹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평균 나이는 26세다. 기자가 “소녀시대라고 하기엔 나이가 많네요”라고 했더니 한 멤버가 “저희는 숙녀시대예요”라며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그러나 그들의 겉모습만으론 국악 그룹이란 분위기가 별로 묻어나지 않는다. 검은색과 흰색 의상으로 도회적 분위기를 냈고 재킷과 스커트, 긴 부츠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국악 그룹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매니저 김명범씨는 “고급스러운 섹시함을 내보이려는 게 의상 컨셉트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국악 걸 그룹이란 것을 각인시켜 준 것은 그들이 들고 있는 가야금·대금·해금 같은 악기였다. 국악 그룹이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아니라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주려는 전략이다.

그래서 그들이 지향하는 음악도 색다르다. 바로 “이게 발라드지 무슨 국악이야”란 소리를 듣는 거다. 팀 리더인 남지인씨는 “국악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지루하다거나 답답하다는 그런 한계를 넘어서려고 해요. 국악기가 내는 독특한 선율을 가지면서도 대중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다가가려 하는 거지요”라고 말했다.

국악에다 대중 음악, 클래식을 결합해 셋의 앙상블을 소화하면서 대중적인 시도로 음악 팬들을 매료시키는 게 미지의 숙제다.

국악+대중 음악+클래식 앙상블

섹시함을 강조한 ‘미지’의 첫 앨범 표지 사진.

음악을 만드는 과정도 색달랐다. 이들이 내놓을 앨범에 수록된 12곡 중 10곡은 클래식과 국악을 접목시킨 연주곡이다. 그리고 나머지 2곡이 대중적인 발라드 곡과 국악을 적절하게 섞은 보컬 곡이다. 작곡은 주로 대중음악을 만들어온 이지수씨와 조영수씨가 맡았다. 이씨는 드라마 ‘겨울 연가’, 영화 ‘친절한 금자씨’ ‘올드 보이’ ‘실미도’의 음악 감독을 맡았다. 또 조씨는 SG워너비, 이승철, 신화, 이승기 등 쟁쟁한 가수들의 노래를 작곡했다.

이들이 곡을 만든 다음 멤버들이 국악기로 연주했다. 그리고 국악기들의 배경음악으로는 오케스트라가 동원됐다. 이 작업에는 체코 필 하모니가 참여했다.

김명범 매니저는 “서양 악보로 작곡된 음악을 국악기로 연주하기에는 한계도 있고 어려움이 크다. 그래서 국악 작곡가들이 동원돼 다시 편곡하는 과정을 거쳐 연주자들이 음악을 완성해 냈다”고 설명했다.

앨범의 타이틀 곡은 ‘흐노니’와 ‘K·new’. 흐노니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순수 우리말로 보컬 타이틀 곡이다. 민요를 전공한 김보성씨의 발라드 창법에, 해금·대금·가야금 등의 국악 연주 그리고 기타·드럼·베이스의 연주가 가미됐다. 조영수씨 곡이다. 민요를 전공한 김씨의 목소리가 호소력 있게 어필한다. 또 대금·해금 등과 양약기의 화음이 부드럽다. 대중 가요 창법과 민요 창법을 넘나드는 보컬도 인상적이다. 연주곡 타이틀 곡인 ‘K·new’는 해금·가야금이 주요 사운드로 등장하고 짧은 현대사 속에서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뤄낸 한국의 아름답고 역동적인 모습을 선율로 그려내고 있다고 한다.

“김연아 스케이팅 때 라이브 연주하고 싶어”
그들의 꿈은 다부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악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요”(진보람), “사물놀이에 매력을 느끼는 외국 사람들이 생긴 것처럼 우리는 미지의 국악으로 더 많은 외국인들을 매료시키고 싶습니다”(이영현), “국악이 이렇게 밝고 부드러운 것이었나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박지혜), “해금 연주자인데 남들이 제 악기를 보고 아쟁이라고 하면 너무 속상했어요. 꼭 성공해서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 프로그램에 나가고 싶습니다”(이경현),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트를 탈 때 우리가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해 주고 싶어요”(신자용) 등등.

아직 앨범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방송에는 한 차례 출연했다. 지난해 12월 31일 밤 MBC 가요대전에 SG워너비와 함께 출연해 국악의 맛을 조금 보여줬다. 당시 임진각 야외 무대에서 공연을 했는데 영하 14도까지 떨어진 혹한 속이었다. 가야금을 연주한 진보람씨는 “너무 추워서 손이 아플 정도였어요. 그런데 무대에 막상 올라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관객을 보니 ‘아, 드디어 무대에 섰구나’ 하는 생각에 마구 가슴이 벅차올라 추운 줄도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오랜 준비 끝에 이제 날개를 펼쳐보려는 ‘미지’. 그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각국으로 활동 무대를 넓혀 한류의 영역을 넓히겠다는 의욕을 과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악계에선 이들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고 한다. 전통 국악으로만 승부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색다른 퓨전의 길에 발을 내디뎠다. 미지의 실험은 독특하다. 독특함만으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국악을 내세운 인기 그룹이 우리에게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지만 대중의 마음을 달구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신용호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