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눈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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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호 02면

지난 연말부터 구조조정 얘기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등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이 직장을 떠나고 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사오정’ ‘오륙도’ 같은 말들이 실감 나는 나이라서다. 제2의 인생을 위해 준비해놓은 것도 별로 없다. 실직하면 갈 곳도, 할 일도 마땅찮다. 모아둔 돈도 없으니 노후가 정말 걱정이다. 직장은 단순한 근무처가 아니다. 하루 24시간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곳이다. 직장이 주는 희망과 고통이 인생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무대를 떠나는 배우처럼 직장을 떠나는 사람은 인생을 잃는 듯한 비감에 젖는다. 명예나 희망이란 이름으로 포장해도 당사자는 불명예와 절망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며칠 전 대통령의 눈물이 내 가슴을 적셨다. “경로당 자활근무로 72만원을 번다”는 ‘봉고차 모녀’, 사채로 고생하다가 정부 도움으로 이자가 대폭 줄었다는 최모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일자리 창출을 올해 최우선 국정 과제로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의 다짐도 반갑다. 국가고용전략회의도 매달 열고, 상반기 중에 고용전략도 수립하겠단다. 실직의 고통과 미(未)취업의 절망에서 배어 나오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마음에서 흘린 눈물이리라 믿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불안감이 싹트는 것도 사실이다. 혹여 오해할까 봐 거듭 밝혀둔다. 일자리는 늘어야 하고, 퇴직은 최소화돼야 하며, 취업 문호는 넓어져야 한다. 그렇게 하겠다는 대통령의 다짐과 정부의 정책방향 역시 옳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는 법. 대통령이 강하게 다짐할수록 그에 따른 부작용도 커지기에 하는 우려다.

무엇보다 경쟁력 강화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구조조정이 지연될 것 같아 걱정이다. 무한경쟁과 동의어인 세계화 시대에 구조조정은 필수다. 헌 사업은 접고 새 사업을 벌이는 리스트럭처링은 물론, 인원을 줄이고 부실 사업을 매각하는 다운사이징 역시 불가피하다. 그래야 미래를 위한 여력이 생기고 경쟁력이 강화된다. 그게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비결이다. 실직의 고통 앞에서 그 어떤 위로도 사치겠지만, 그 고통 때문에 구조조정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엔 구조조정이 미흡했다. 정부가 ‘일자리 나누기’를 강하게 밀어붙인 영향이 컸다.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30대 그룹의 일자리가 소폭이나마 오히려 늘어난 건 그래서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마냥 늦출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선진국 기업들은 진작 구조조정을 끝냈다. 이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공격 경영을 펼칠 태세다. 우리 경제와 기업의 올해 성적표를 불안하게 보는 건 이 때문이다. 올해도 구조조정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일자리가 강조되면서 기업들은 잔뜩 부담을 느낄 것이다. 대통령이 일자리 개수를 일일이 따지기 시작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만이 살 길이라며 1965년부터 매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주재했다. 수출 목표와 진행 상황도 직접 챙겼다. 성과도 있었지만 부작용도 많았다. 다음 번 수출을 미리 당겨서 하는, 밀어내기 수출이 성행했다. 대통령의 역점사업에 감히 누가 토를 달 수 있으랴. 하지만 수출은 그래도 낫다. 시기를 앞당기는 것일 뿐 다음 번 수출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다. 하지만 일자리는 다르다. 일자리 개수를 따지고, 그래서 구조조정이 막히면 부작용은 상당할 것이다. 구조조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사라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 대통령 시절에 주로 활동한 기업인이라는 점도 못내 마음에 걸린다.

당장의 고비만 넘기려는 건 정부가 해선 안 될 일이다. 미래를 위한 대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고용전략회의도 마찬가지다. 일자리 개수를 목표로 삼거나 기업을 닦달해선 안 된다. 지금은 고통스럽더라도 미래의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오히려 지원해야 하는 까닭이다. 감상과 논리의 준별, 이게 실업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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