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10시간] '산소같은 여자' 이영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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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아름다운 것은 큰 복이다. 유난히 하얀 피부에 동그란 눈동자가 맑은 이영애(29). 물론 마음이 중요하단 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의 속내야 어떻든 그와 함께 한 10시간 동안 그를 마주친 어른이나 아이들의 공통된 첫 마디는 "너무 아름다우시네요" "진짜 이쁘다" 였다. 예외가 없었다.

#1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한줄기 소나기가 간절하던 날, 강남의 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굳이 그리로 간 것은 그가 자주 가는 곳이라며 추천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들을 만날 때만 그 곳을 찾는다고 해서 마다하지 않았다. 유리창으로 바깥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아이보리 빛깔이 은은한 식당. 줄줄이 놓인 까만 의자가 인상적이었다.

"영화 곧 개봉하죠."

"예, 다음달 9일에 '공동경비구역JSA' 요. '인샬랴' (1997년)이후 두번째 영환데 많이 떨리네요. "

"그러고 보니 '인샬라' 도 북한 외교관과의 사랑을 다룬 얘기고 이번에도 판문점을 배경으로 한 남.북한군 얘기로 알고 있는데. "

"우연히 그렇게 됐어요. 의도한 건 아니에요. 지난번은 멜로였지만 이번 역은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아주 차고 냉철한 스위스 혼혈 장교 역할이죠. "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꼭 죽같이 보이는 리조토라는 음식을 주문했다.

"점심인데 왜 그런 음식을…" 하고 물으니

"속이 좀 안 좋아서" 라고 답했다.

헬리코 박터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나. 약을 먹으려 꺼낸 봉투 안에는 그야말로 별의별 약이 가득하다.

레몬을 동동 띄운 물컵을 들면서 "약을 많이 사놨으니 다행이지 요즘 같아선 약도 못 먹을 뻔 했어요" 라며 은근히 의약분업사태에 불만을 표출했다.

#2 그는 자신의 성격이 털털한 편이라고 소개했다. 영화를 찍을 때 스태프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도 그렇다고 일러줬다. 확실히 사람을 대할 때 그런 면모가 돋보였다.

"여기요-. " 라며 식당 웨이터를 부르는 상냥한 톤이나 사인 해달라는 아이들의 얼굴을 매만지는 품에서도 그런 면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머리 속에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서 늘 걱정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답하는 거나 행동거지가 무척 조심스러웠다.

"기자들이 저하고 인터뷰하면 재미가 없대요. 틀에 박힌 대답만 한다나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본래 그런 걸요." 솔직히 그의 대답은 너무 얌전했다.

그런데 그가 던지는 한마디. "저도 가끔 일탈을 꿈꿔요. " 정신이 확 들었다.

저 얌전한 아가씨가!. "어떤 일탈이죠. " "도시로부터 벗어나는 거요. 제 취미가 여행이잖아요. 그것도 오지 여행. 고생을 하며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을 보면 가슴이 확 트이거든요. " 실제 그는 유럽 배낭여행은 물론이고 인도의 오지 등 여행을 많이 다녔다.

히말라야에도 갈 계획이다. 그런데 '일탈' 로 시작한 화두가 '자연' 으로 끝날 줄이야. 조금은 답답한, 그래서 순수한 이영애식 일탈해소법이었다.

"그렇게 끼가 없어서 어떻게 연예활동을 하세요."

사실 "그러게 말예요" 정도의 대답을 기대했으나 이번에는 정말 의외다.

"끼가 없으니까 기(氣)로 무장을 하죠. 끼라고 하면 튀는 행동을 말하는데 연기는 그게 다가 아니죠. 만나는 사람들의 말에서 혹은 아이들의 맑은 눈빛 등 사람과 사물에서 호기심을 느끼고 그때의 감상을 마음에 쌓았다 연기할 때 풀어내는 거죠. "

#3 그렇게 첫날을 보내고 사흘 뒤 '이소라의 프로포즈' 녹화가 있는 날, KBS연기자 대기실에서 또 만났다. 두번째라 낯이 익어 그런지 녹화를 앞둬 긴장될 텐데도 반갑게 맞아줬다.

분장실에 놓인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 같은 거 자주 읽으세요. "

"노력하죠. 좀 읽는 편인데, 참 그저께 밤에 '국화꽃 향기' 란 소설을 읽었어요. 밤을 꼴딱 샜죠. 재미도 있는데다 너무 슬퍼 밤새 울었어요. 지금도 그런 사랑이 있는지…. "

책 얘기를 꺼내니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한참 소설의 줄거리를 들려준다. 특히 그 책은 다음 영화 '선물' 과 스토리가 비슷해 감정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됐단다.

옆 대기실에는 가수 한대수.김장훈씨 등이 있어 시끌벅적했다. 그러던 중 대기실 문이 삐익-하며 열렸다.

김장훈이 개그맨 김영철을 끌고 나타났다. 김장훈이 그에게 "영철이가 한번 인사하고 싶대서" 라고 소개했다.

"오모 이쁘셔라. 저 정말 팬이거든요. " 얼굴이 빨개진 영철이 인사를 했다.

보아하니 김장훈을 졸라 온 듯 했다. TV에서 훨훨 나는 영철이 그렇게 수줍어 할 줄이야.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영애는 정말 팬도 많다 싶었다.

그 사이 매니저가 저녁으로 김밥과 샌드위치를 사왔다. 거기서 우리는 두번째 식사를 했다.

의자에다 음식을 펼쳐놓고 맛있게 먹었다. 끼니를 이런 식으로 때우는데 익숙하다고 했다. 그의 대표적인 별칭은 '산소 같은 여자' 와 '빛이 되는 여자' 다.

그는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정말 그렇게 되고 싶다고…. 그리고 새로운 변신도 꿈꾸고 있었다.

배우라면 '투명한 물' 같아야 한다고. 어떤 역을 맡아도 상황에 맞는 색이 나올 수 있도록. 혹시 "나이에 대한 부담은 없냐" 는 질문에 "왜 없겠어요. 그런데 투명한 물같이 되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와는 긴 시간 얘기하길 잘했다 싶었다. 심중을 쉽게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지대로 아주 순수한 여자였다.

글〓신용호,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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