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지분 매각 전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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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현대가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자동차 지분(6.1%.약 2천억원 어치)을 22일 증시에서 전격 매각해 계열분리.경영권 분쟁 관련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鄭 전 명예회장은 지난 5월 25일 계열사 보유 주식을 팔고 자동차 지분을 매입했는데 이때 산 자동차 주식이 계열분리의 걸림돌이 되면서 정몽헌.몽구 회장 형제간 경영권 분쟁의 씨앗이 됐었다.

이후 현대는 鄭 전 명예회장의 지분을 채권단에 매각 의뢰하는 대가로 대출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대출을 받으면 이자까지 내야 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아예 문제의 주식을 파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

현대자동차나 정몽구 회장 측에 파는 것은 鄭 전 명예회장의 3부자 퇴진 선언의 뜻에 부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고려대상에서 제외했다. 현대는 이 때문에 22일 매각 직전까지도 자동차 측이 제기한 음모론.이면계약설에 시달려야 했다.

현대는 직접 매각의 대상으로 미국계 투자기관인 자딘플레밍을 정해 鄭 전 명예회장 지분 1천2백71만주 가운데 1천만주 정도를 파는 방안을 추진했다.

자딘플레밍 측은 주당 1만5천1백원을 제시했다. 현대는 연말까지 이를 매각하면 평균 2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으나 약 5백40억원을 손해보더라도 이를 서둘러 매각해 자동차의 계열분리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자딘플레밍이 "22일까지 뉴욕.홍콩 등에서 투자자를 모집했으나 겨우 2백50만주만 소화할 수 있다" 는 통보를 해왔다.

이에 따라 현대는 22일 오전 연.기금과 은행 등 기관투자자들에게 연락해 공개입찰 방식으로 증시에서 매각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자딘플레밍은 이날 9시부터 이뤄진 10분간 거래에서 국내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들보다 싸게 주문을 내는 바람에 한주도 사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날 자동차 주식은 자딘플레밍이 제시한 가격보다 한주에 5백~7백원이 비싼 1만5천6백~1만5천8백원선에 거래됐다.

鄭 전 명예회장에게는 이미 이를 팔겠다고 보고했다고 현대 측은 설명했다.

현대자동차는 한편 자신들을 제외하고 매각한 데 대한 섭섭함과 일반 매입자 가운데 정몽헌 회장과의 특수관계인이 끼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대체로 만족한다는 반응이다. 계열분리의 걸림돌이 제거됐기 때문.

현대는 빠르면 23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자동차 계열분리를 신청하고, 대금이 입금되는 24일께 이 돈으로 현대건설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회사채를 매입할 예정이다.

김시래.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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