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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동성애자에 표현의 자유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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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늦더위를 식히는 단비가 제법 거센 지난 주말 저녁, 그들은 기자를 서울 이태원동 해밀턴 호텔 뒤편 바로 안내했다.

다음달 1일부터 열흘간 계획된 퀴어(동성애자를 뜻하는 속어)영화제 기간 중 이와는 별도로 5일 동안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 열릴 퀴어문화축제를 후원하는 행사가 열리는 곳이었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적 소수자, 즉 동성애자.양성애자 등이 그들의 영역을 넓혀보겠다는 꿈을 갖고 마련한 문화행사.

소수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그에 완강하게 맞서는 사회의 편견이 충돌을 빚는 듯 분위기는 다소 음침했다.후원행사에 참석한 1백여 명은 쾅쾅 울리는 음악 속에서도 축제를 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이반(異般)' 이라고 소개했다.다수인 '일반' 에 끼지 못하는 소수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이번 축제는 그동안 영화나 문학, 인터넷 공간에서 활발히 논의해왔던 동성애 문제의 당사자들이 처음 공개 석상에서 토론.강연.토크쇼 등을 벌인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예상 참가자수는 약 3천명. 당초 이들은 행사를 이태원이나 신촌 등 길거리에서 할 생각이었으나 혹시 '집단 테러' 라도 당하지 않을까 싶어 대학으로 장소를 옮겼다.

실제 2년 전 퀴어영화제 당시 누군지 모르지만 영화 상영 중 전기 코드를 뽑고 포스터를 뜯어버려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길거리로 나가는 것은 아직 두려운 모양이다.

일반인들은 동성애를 호기심으로 대할 지도 모르지만 어느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에게 동성애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 같다.

"이화여대에서 행사장을 내주면서 남학생들에게 밤 11시까지 캠퍼스를 떠나야 한데요. 저희들은 여성에겐 태생적으로 관심이 없거든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죠. 정작 겁내는 것은 오히려 여자들이 추근대지 않을까 걱정하는 우리인데요. " 국내에는 남성 동성애자만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6월 개설한 동성애 포털사이트 보갈닷컴(bogal.com)의 접속건수가 10만을 넘어 최근에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하는 짐작도 해본다.학계에서는 동성애가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를 놓고 여전히 논란이 팽팽하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대체로 성적 취향은 생물적.심리적.사회적 요인이 두루 얽혀 아주 어릴 적부터 형성되는 것이지 결코 선택의 문제는 아니라는 학설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성적 취향은 최대한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소수인 동성애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정신건강이 중요하다.그들의 성적 취향도 결코 별난 것이 아니고 적잖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라는 인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공개적인 토론의 장이 최선이다.그들 사이에 동성애 성향을 드러내는 것을 '커밍아웃' 으로 부르는데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말하자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나면 자긍심이 한결 높아진다는 고백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결코 다수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더 나아가 동성애 부부가 용인된다면 입양아 문제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까요. " 어느 동성애자의 이런 '항변' 은 너무 낭만적인 생각인가.

정명진 중앙일보 대중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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