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포커스 조정 배경] 정부 곤혼스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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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1일 시작되는 을지 포커스 한.미 합동 군사연습에 대해 북한측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지난 19일 연습 중단을 요구하며 훈련강행시 남북관계가 '6.15 공동선언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이 6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공동선언 파기까지 위협하고 나선 것은 처음이라 정부는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20일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 모처럼 조성된 남북 화해 분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돼 연습사실을 널리 알리지 않았다" 며 "평양 정상회담 이후 연습내용도 재난대비 중심으로 짜는 등 사실상 축소했는데 북한측이 생각보다 강경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며 곤혹스러워 했다.

국방부와 행정자치부 등 유관 부처들은 도상(圖上)연습에 불과한 을지 포커스 렌즈 연습에 대한 북한측의 비난에 대해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북측 요구대로 연습을 원천적으로 중단하는 것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측의 '6.15 공동선언 파기 위협' 이 엄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흐트러진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려는 내부용일 것" 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의외로 강경한 입장을 지속할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한다.

무엇보다 북한 당국이 과거 군사훈련을 이유로 남북 합의사항을 깨뜨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992년 2월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된 직후에도 북한은 팀스피리트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핑계로 노부모 방문단 교환.11차 적십자 회담.군사직통전화 개통 등 합의사항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조평통 성명은 "을지 포커스 렌즈 군사연습으로 말하면 미국과 남조선 당국이 우리 공화국을 무력으로 압살할 목적 밑에 벌이는 대표적인 북침 전쟁 연습" 이라면서 우리 정부에 대해 비난 강도를 높이고 있다.

과거 군사훈련에 대한 비난의 경우 미군측에 주로 초점을 맞춘 것과 차이가 난다.

◇ 을지 포커스 렌즈〓전시.사변(事變) 등 국가 비상사태에 대비한 민관군 합동훈련인 '을지' 와 한.미연합사령부의 군사연습인 '포커스 렌즈' 를 합친 한.미 합동 군사연습. 별개로 치르던 것을 94년부터 통합 운영하고 있다.

매년 여름철을 기해 10일 정도 실시되며 실제 병력과 장비동원은 없이 컴퓨터 전쟁게임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도상지휘소(CPX)방어 연습이다.

시.군.구 이상 모든 행정기관과 한국군의 군단.함대사령부.비행단 이상 부대가 참여하며, 미군측에서는 주한미군사령부.미8군사령부 예하부대가 동원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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