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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학] "가족은 내 삶과 문학 그 자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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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바보들의 행진'…지난 1970년대를 통과한 젊음에겐 익숙한 제목이다.

소설가 최인호씨의 원작소설이면서 영화.음악 등 전방위 대중문화로 활짝핀 70년대의 문화코드 이기도하다.

청바지에 통기타 메고 생맥주 마시며 기성 체제와 세대에 반란하고 자유와 해방을 꿈꿨던 70년대, 젊음의 핵(核)과 전위(前衛)에 최씨는 서 있었다.

모든 틀을 거부하고 뛰쳐나가야 하는 청년문화나 전위와 가장 기초적인 사회의 틀인 가족은 얼른 보면 상반된다.

그러나 최씨는 청년문화의 기수로 나서면서부터 더더욱 가족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려해 왔다.

월간 '샘터' 75년 9월호부터 '가족' 을 연재하기 시작, 최근 나온 2000년 9월호에 그 3백회를 실었다.

25년간 한번도 거르지 않아 한국 잡지 사상 최초로 3백회 연재 기록도 세웠다.회당 2백자 원고지 20장 남짓의 '가족' 은 가정에서 겪고 깨달은 것들을 재미있게 쓴 글이다.때문에 에세이의 사색과 소설의 흥미를 함께 한다.이 작품은 샘터사에서 5권까지 출간돼 있다.

이번 3백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는 아내는 내게 무엇인지를 깊이 묻고 있다.작가는 가장 소중한 사람 10명을 꼽고 그 우선 순위를 정하라는 숙제를 신부님으로부터 받는다.

주저없이 가족을 우선 올린 작가는 그러나 부모님.아들딸.아내 중 누구를 가장 먼저 올려야할지 고민이다.

셋이 동시에 물에 빠지면 서양에서는 아내만 있으면 자식은 얼마든지 낳을 수 있다는 실용적인 생각에 아내.자식.엄마 순으로 구한다.

동양에서는 효도가 미덕인지라 엄마.자식.아내순으로 구한다는 우스개 이야기를 소개한 후 작가는 제일 먼저 아내를 구하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수억년의 윤회를 거듭해 아내를 만났고, 또 그만한 세월이 흐른 후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서든 다시 만나야 할 부부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좋은 아버지상을 그리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너무 힘듭니다.가정은 안식처만은 아닙니다.지친 일상에서 돌아와도 식구들이 말을 걸 때 피곤하니 쉬어야겠다는 말은 죄악입니다.일상에서 다친 마음들을 서로 토해내야 하고, 그리고 서로 치유할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그런 가족이 없으면 인간이 멍들고 가족이 해체되고 사회가 망합니다."

'가족' 을 쓰면서 최씨는 처음에는 '견습 부부' 란 제목처럼 유머와 해학적인 눈으로 가족을 바라보았다.

다음에는 종교에 귀의하듯, 명상하듯 가족의 속내를 읽어냈다.그러다 요즘에는 먼 과거, 미래의 별을 바라보듯 인연으로, 영원의 도반으로 가족과 함께 하고 있다.

이런 최씨의 가족 바라보기는 30여년의 소설 역정과 그대로 닿아 있다.초창기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적신 대중소설에서부터 있는 것을 있게 하고 없는 것은 없게하는 역사, 혹은 구도 소설에 이르는 문학의 길이 바로 가족에서 연유한 것이다.

"가족은 이념이나 종교, 그리고 영원보다 더 깊고 넓은 분명한 실체입니다.엊그제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그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사회적 정의니 지구적 사랑이니 외치면서도 가족에 대한 그것은 없는 것이 오늘 우리들 가족은 혹 아닙니까. 나는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내 일, 곧 문학을 위해서라도 가족과 깊이 있게 생활하며 죽을 때까지 '가족' 을 쓰려 합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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