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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산책] 김호곤 올림픽축구팀 전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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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김호곤 감독(左)이 부인 최문실씨와 함께 자택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면서 담소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백수(白手)에도 질(質)이 있다. 아테네올림픽 축구대표팀을 이끌었던 김호곤(53) 감독은 '느긋한 백수'다.

지난해 1월 이후 1년8개월간 올림픽팀과 동고동락했던 김 감독은 요즘 모처럼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 이태원동 하얏트호텔 아래 김 감독의 자택을 방문한 날은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이었다. 화창한 가을볕에 부인 최문실씨와 함께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에서 54년 만의 올림픽 8강을 이끈 '승부사'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가끔 요리나 집안일을 도와주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김 감독은 "요리는 젬병이고, 청소나 빨래는 잘합니다"라며 껄껄 웃었다.

모처럼 집에서 쉬며 백수 생활 즐겨

사실 요리는 부인이 프로급이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만두 전문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착실히 번 돈으로 최근 수유동의 골프연습장도 인수했다. 축구계에서 소문난 '베스트 드레서'인 김 감독의 의상 코디네이션도 미술을 전공한 부인의 몫이다.

김 감독 부부는 이달 초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녀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비즈니스 마케팅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 성헌(21)씨는 키 1m86cm의 당당한 체격에 대학 미식축구팀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김 감독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이 인터넷에 떠돌 당시 그는 실명을 공개하며 "내가 김호곤 아들인데, 우리 아버지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골프 특기자인 딸 정연(20)씨는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로 스쿨(법학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감독은 미국을 거쳐 브라질에서 '삼바 축구'를 돌아볼 예정이다. "선수와 지도자로 지구촌 곳곳을 다녀봤지만 브라질만 못 가봤거든요. 모처럼 시간이 났으니 브라질을 거쳐 독일에 가서 공부를 좀더 하고 올 생각도 있어요."

김 감독은 '백수 4형제'의 맏형이었다. 올림픽이 끝난 뒤 대표팀 코칭스태프(이상철 수석코치, 박경훈 코치, 김성수 골키퍼 코치)가 모두 졸지에 실업자가 된 것이었다. 다행히 이 코치는 울산대 감독으로 복귀했다.

김 감독이 팀을 맡는다면 '남은 동생들'과 함께 '패키지'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 이들은 역대 대표팀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했다.

88서울올림픽과 92바르셀로나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역임한 김 감독은 '선수 장악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는 '최태욱 항명사건'등 곡절을 많이 겪었다. "태욱이가 말리전 전반에 교체돼 나오면서 유니폼을 집어던지는 장면을 나는 못 봤어요. 경기가 끝난 뒤에야 얘기를 들었고, 정몽준 회장님이 '그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주의를 주시더라고요." 최태욱을 끔찍이 아꼈던 김 감독의 충격은 더 컸고, 그를 심하게 질책했다.

아내 만두집 내조 "너무 고마워"

파라과이와의 8강전에서 아쉽게 진 다음날 김 감독은 숙소 호텔 정원에서 선수들과 '작별 파티'를 했다. 선수 한명 한명에게 맥주를 따라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 느그들, 꿈을 크게 가지라. 이 코딱까리(코딱지의 경상도 사투리)만한 한국 프로팀에서 쫌 한다고 폼 잡다가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

일부 프로팀에서 김 감독을 잡으려 한다는 소문이 벌써 나돌고 있다. 창단을 추진 중인 경남 프로축구팀에서도 김 감독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가 해외로 훌쩍 떠나는 것도 이런저런 구설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 김호곤 감독은 …

▶생년월일=1951년 3월 26일

▶출생지=경남 통영

▶출신교=동래고-연세대

▶출신팀=상업은행-육군-서울신탁은행

▶주요 경력=70년 청소년대표, 71~78년 국가대표

▶지도자 경력=79년 서울신탁은행 코치,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대표팀 코치, 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 코치, 88년 서울올림픽 대표팀 코치,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코치, 92~99년 연세대 감독, 2000~2002 부산 아이콘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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