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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조용관씨 아들 경제씨, 상봉으로 그간 증오 풀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정(情)!

50년간 차곡차곡 쌓였던,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 같던 미움과 원망을 한순간에 녹여준 건 바로 혈육의 정이었다.

'빨갱이 가족' 이라는 감당키 힘든 멍에를 씌웠던 월북자 아버지를 상봉한 趙경제(52.무역업)씨. 그는 17일 "이제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다" 고 말했다.

趙씨의 아버지 조용관(趙鏞官.78)박사는 북한 최고의 방직 기술전문가로 '공훈과학자' 칭호까지 받은 인물. 현재 방직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경제씨가 두살, 여동생 경희(50)씨가 태어난 1950년 돌연 월북했다.

그때부터 趙씨에게는 월북자 가족으로서의 맵고 지독한 세상살이가 시작됐다.

"홀로 남아 어떻게든 자식들을 잘 키워보려고 억척스럽게 사시는 어머니 모습을 볼 때마다 미칠 것 같았습니다. 학교에 가면 '빨갱이 자식' 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두려워 말 한마디 못하고 지냈지요. 한때 자폐증까지 나타났지요. " 법에도 없는 '연좌제(連坐制)' 는 그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커다란 벽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하려 했지만 "집안 배경 때문에 어림도 없다" 는 친척들의 만류로 서울대 법대로 진로를 바꾸었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공직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수사기관에서는 잊을 만하면 한번씩 찾아와 마음의 상처를 덧내고 대기업 취업 후에도 가족내력이 밝혀질까봐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는 결국 어머니가 과로로 세상을 등진 94년 호주로 이민을 갔다. 여동생 경희씨는 趙씨보다 앞서 84년에 이미 한국 생활을 접고 호주로 떠났다. 그는 "월북자 가족으로 겪은 고통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에 이민을 결심했다" 고 말했다.

기선민.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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