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상봉] 장가용교수·이호철씨 북가족들과 상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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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소설가 이호철씨가 17일 오후 평양 보통관광호텔에서 여동생 영덕씨를 만나 끌어안고 있다.[평양=대한적십자사 제공]

◇ Joins.com 남북 이산가족 상봉 포토뉴스

"오마니, 그 곱던 젖가슴이 이렇게 쭈그러들었구만요…. "

50년 만에 평양에서 어머니를 만난 장가용(張家鏞.65)서울대 의대 교수는 어머니의 가슴에 와락 안겼다.

17일 오전 11시 평양 보통강호텔. 남쪽의 아들과 북쪽의 어머니는 반세기 만의 상봉을 이렇게 시작했다.

아들 張씨가 먼저 "저를 기억하세요" 라고 묻자 어머니 김봉숙(89)씨는 "이게 꿈이에요, 생시예요" 라며 존대말을 했다.

張씨는 어머니에게 "차라리 '야, 이놈아 왜 인제 왔느냐' 라고 때리진 못할망정 왜 존대말을 쓰세요" 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어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張씨는 60년 전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렸다.

1940년 서울역에서 張씨를 등에 업고 가던 어머니가 넘어져 시멘트 바닥에 뺨을 긁히자 다섯살난 아들 張씨가 조막손으로 어머니의 뺨을 어루만진 일이다.

張씨가 어머니에게 "기억나세요" 라고 묻자 놀랍게도 어머니는 "그럼 기억나고 말고…" 라고 답했다.

훌륭하게 자란 동생들도 상봉자리에 함께 했다.

큰 누이동생 신용(60)씨는 식품공장 연구원, 둘째 동생 성용(58)씨는 핵물리학을 전공한 뒤 평양시 종양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 중이다.

막내 인용(55)씨는 강계의학대학 교수다.

張씨의 부친 장기려(95년 12월 사망)박사는 평북 용천 출신으로 월남한 뒤 무료 진료활동을 펼쳐 '한국의 슈바이처' 로 불렸다.

張씨는 "오늘 밤만이라도 어머니와 하룻밤 같이 지내고 싶어요" 라며 호텔문을 나서 아쉬운 이별을 했다.

張씨와 함께 대한적십자사 전문위원 자격으로 방북한 소설가 이호철(李浩哲.68.경원대 국문과 초빙교수)씨도 같은 호텔에서 여동생 영덕(58)씨를 만났다.

李씨는 동생을 꼭 안은 채 "울지말자" 며 숨죽여 흐느꼈다.

98년 상봉기회가 있었지만 북측 안내원에게 사진만 건네고 헤어졌던 터라 감격은 더했다.

그는 아버지가 75년 돌아가셨다는 얘기에 "그래도 72세까지 사셨으니 다행" 이라며 동생을 위로했다.

하지만 평남 북창군에 사는 남동생 호열(64)씨가 중풍으로 쓰러져 상봉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을 쳤다.

함께 방북한 장가용씨와 이호철씨는 이번 인연을 계기로 평양에서 의형제를 맺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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