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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喝>! 은둔과 권위 모두 치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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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선(禪)의 종지를 모르고 깨달음의 우열을 말하고, 법랍(法臘.수행 기간)을 말하고 큰스님과 방장의 권위를 말한다. 큰스님? 그래, 뭐가 크기에 큰스님이냐?" 한국불교에 대한 가장 지독한 비판은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의 입에서 나왔다. 6년 전 나온 책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에서 퍼부어진 이 욕설 한바탕에 불교계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국외자의 방약무인에는 무대응이 약이라고 봤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도법(道法.55.사진) 전 실상사 주지스님이 입을 열었다. 불교계 중진인 도법은 존경받아온 수행자. 그런 그는 신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를 내며 불교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때문에 한국 불교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응답을 해야 할 판이다. 그의 불교 비판은 신랄하지만 더없이 진지하다. 또 '네 탓'의 손가락질 대신 뼈를 깎는 '내부 고발자'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만해 한용운 '조선불교유신론'의 불교개혁론을 연상시킨다.

"불교이론은 화려한데 사회적 고통과 중생 신음은 절절하다. 수행론은 무수한데 수행자의 방황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불교의 세속화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숨막히는 막다른 골목이다."(7쪽) "사찰은 산이 수려해 놀러가기 좋은 곳 정도로 인식된다. 또 죽은 자를 염불하는 곳에 불과하다. 역사대중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한 열정을 바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239쪽)

쉽게 말해 도법 스님의 말은 '한국 불교는 죽어야 산다'는 쪽이다. 산 속으로 숨어들어간 은둔주의의 수행풍토에서 권위에 찌든 종단의 비민주성에 이르는 그의 불교 비판은 적나라하다. "수행자답지 못한 몰상식이 파격의 무애행(無碍行)으로 통하고, 비불교적인 부당함도 어른 스님이라는 이유로 비판 한마디 할 수 없다."(95쪽) 그가 볼 때 현재 불교는 '원칙과 상식이 무너져내린' 상태다.

그러면 방법은 없는 것일까? 부처가 설파한 진리가 화석화될 때 대승불교가 나왔듯이 자기혁신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후 대승불교 역시 관념화돼 갈 때 선불교가 일어났듯이 지금의 한국 불교를 일으켜 세울 대안운동은 과연 무엇일까? 도법 스님은 자기갱신을 위한 한국 불교의 오랜 전통인 결사(結社)운동(지눌의 수선사 등)을 암시한다. 이를 위해 당장 "첫 단추부터 새로 꿰자"는 모색이 바로 이 책이다.

첫 단추란 부처에게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의 생애와 깨달음을 되새김질해 보며 한국 불교 갱신의 실마리를 쥐어보자는 제안이다. 이 책은 싯다르타의 탄생.발심(發心)에서 출가.수행.깨달음.전법에 이르는 6개 장으로 구성됐다. 장마다 '반성되어야 할 우리의 자세' 항목을 넣어 한국 불교를 비춰보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이 책이 조계종 산하의 출판사인 '아름다운 인연'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과연 불교의 자기 갱신에 시동이 걸릴 것인가.

조우석 기자

***도법 스님은…

1998년 조계종 분규 때 총무원장 대행을 맡았을 당시의 깔끔한 처신으로 이름이 높다. 소신껏 분규를 마무리한 뒤 미련없이 산으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18세에 출가한 도법은 불교의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에서 깨달음을 얻기보다는 사회적 실천방식을 택한 수행승. 생태.생명 문제에 관심이 많고, 90년 젊은 스님들과 결사운동인 선우도량을 만들어 불교 개혁에 주력해 왔다. 현재는 '길 위의 3년'을 기약하며 생명.평화.민족화해를 화두 삼아 한반도 구석구석을 탁발 순례 중이다. '내가 본 부처' 등 6권의 저술은 교양물로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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