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새 방법론의 입문서 '미시사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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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이 책은 부제를 '역사학의 새로운 가능성-미시사의 이론.방법.논쟁' 으로 달았다. 책의 성격을 이보다 간결.명료하게 정리하기는 쉽지 않았을, 적확한 표현이다.

이른바 '미시사(microstora)' 는 '가능성의 역사' 에 접근하는 서양 역사학 분야의 새로운 연구 방법론이다. 미시(微視), 즉 세밀하게 역사를 들여다본다는 게 미시사의 키워드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들여다본다는 말인가. 이 대목에서 미시사는 기존 역사 연구 방법론과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 역사학의 역사와 배경에 대한 설명이 긴요하다. 멀리 갈 것 없이, 프랑스 아날학파의 탄생 과정부터 살펴보자. 미시사는 아날학파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적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1920년대 학파의 창시자인 뤼시앙 페브르를 비롯, 마르크 블로크.페르낭 브로델로 계보를 형성하는 아날학파( '아날' 은 연보라는 뜻)는 이전 사건 중심의 역사가 아닌 구조 중심의 역사 서술 방식을 내세웠다.

모름지기 역사는 시간과 공간의 중층(重層) 구조를 밝힐 때 사실(史實)이 보다 명료해진다는 것.

그러다 보니 큼지막한 정치적 사건이나 몇몇 리더에 관심을 집중하기보다 평범한 일상, 여러 집단의 노력이 이뤄지는 사회구조의 완만한 변화를 주목했다. 한마디로 엘리트주의 사관을 탈피한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한계가 있었다. 아날학파는 역사 서술의 관점을 '낮은 곳' 으로 끌어내렸지만, 지나친 계량화로 인해 구체적인 '인간' 이 빠진 역사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로 그 개별 인간의 심성과 문화를 클로즈업해서 보자는 게 미시사의 핵심 개념이다.

'문화' 를 강조하다 보니 흔히 '신문화사(new cultural study)' 라는 말과 혼용되기도 한다.

이 책은 국내 학계에 도입 단계에 있는 미시사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깔끔한 번역에다, 미시사의 서술방식이 그렇듯이 소설책을 읽는 듯한 가벼운 리듬감, 실생활과 밀접한 사례들로 아카데미즘의 딱딱함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미시사의 본질이 드러나는 곳은 제2.제3부. 미시사의 이론가인 이탈리아 역사학자 카를로 진즈부르그가 쓴 '베난단띠, 메노키오, 샤먼' 은 메노키오라는 별명을 가진 16세기 이탈리아 북부 시골마을의 한 방앗간 주인의 죽음을 통해 민중문화의 내재적 발전 과정을 설명한다.

메노키오는 창조론을 부정하고 생명체의 탄생 과정을 치즈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것으로 설명,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 인물이다.

또 한명의 미시사의 권위자인 나탈리 제이먼 데이비스가 쓴 '마르땡, 아르노, 베르트랑드' 는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주연한 프랑스 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 (미국판은 '서머스비' )의 바로 그 내용을 미시사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16세기 프랑스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가짜 남편 소동을 소재로 변혁기 민중의 삶을 세밀하게 복원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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