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상봉] 남 아내가 보낸 반지 북 아내 손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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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평양방문 이틀째를 맞은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16일 오전 10시20분부터 각자의 호텔방에서 비공개로 북쪽 가족들과 개별상봉을 했다.

○…각각 북한의 처자식과 아들을 찾아 평양으로 간 이선행(81.서울 중랑구).이송자(82)씨 부부 양측의 가족간 만남은 17일로 미뤄졌다.

고려호텔 숙소에서 이뤄진 개별상봉에서 남편 이선행씨는 "오늘은 각각의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더 갖고 내일 마지막 상봉 때 두 가족을 인사시키겠다" 고 말했다. 그래서 李씨 부부의 방은 같은 층이었지만 각자 자기 가족만 만났다.

이송자씨는 오전 10시쯤 객실을 찾아온 큰아들 朴위석(61)씨를 반갑게 맞았다. 전날 반세기 만의 첫 상봉 때의 서먹함은 사라지고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였다.

朴씨는 "어머니 앞에서 생전 처음 담배를 피우고 싶다" 고 하자 어머니는 "건강에 안좋은데 뭐하러 피우려 하느냐" 며 핀잔을 주면서도 허락했다.

朴씨는 자신의 외손자(13)가 공부를 잘해 인민학교 단위원장(학생회장)을 하고 있다고 자랑했고 李씨는 "7세짜리 코흘리개 응석받이가 어느새 손자를 보다니" 하며 대견해했다.

李씨는 아들 朴씨가 "남쪽에 내려가서 두 분이 혹시 북의 가족 때문에 사이가 나빠질까 걱정스럽다" "두 가족이 만나는 문제를 오늘밤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고 속깊은 배려를 하자 "살아 있는 걸 확인한 것만 해도 어딘데 그런 걱정을 하느냐" 며 안심시키기도 했다.

이송자씨 옆방의 남편 이선행씨는 북쪽 아내 홍경옥(76).장남 진일(56).3남 진성(51)씨 등을 만났다. 李씨는 커다란 백지를 펼쳐놓고 북의 두 아들 손자와 친척들의 가계도를 도표로 그려가며 일일이 확인. 李씨는 "이게 우리 집 새 족보" 라며 50여년 만의 후련한 웃음을 터뜨렸다.

○…황해도 연백군이 고향인 이재경(80)씨는 1.4후퇴 당시 네살배기 딸 경애씨를 혼자 떼어놓고 가슴에 한이 맺혀 있는 아내 민정숙씨가 쓴 애절한 편지를 딸에게 전달해 상봉 못지 않은 큰 감동을 자아냈다.

고혈압.신부전 등 합병증으로 수십년간 고생하고 있다는 민씨는 편지에서 "보고 싶은 경애야. 화장실까지 아장아장 따라오던 네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한데 끝내 너를 데려오지 못한 그 긴 세월이 너무도 원망스럽구나. 경애야, 엄마를 용서해다오. 건강 때문에 비록 너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수십년 동안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내 딸아. 정말 너무도 보고 싶구나" 라고 애절함을 구구절절이 드러냈다.

○…척추질환으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방문단에 참가한 金금자(69)씨는 이날 사촌 언니들로부터 "어젯밤 오빠 소식을 수소문해 보니 2년 전 고혈압으로 사망했더라" 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대성통곡.

金씨는 "진작 죽은 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 오지 않았을 것" 이라며 목놓아 울어 주변 사람들을 숙연케 했다.

○…아내와 아들.딸을 만난 이환일(82)씨는 남한의 아내가 애지중지하던 금목걸이를 녹여 만들어준 금반지 3개를 북측 가족들에게 일일이 끼워준 뒤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아들 응섭씨는 가족사진을 찍고난 뒤 "반갑기도 하지만 다 늙어서 이렇게 만나니 서럽고 안타까운 점도 많습니다" 라며 지난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전날 밤 단체상봉에서 과도한 감격과 흥분으로 인해 고열과 기침 등 급성폐렴 증세를 보였던 李근하(71)씨가 16일 아침 긴급히 평양 친선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고령 이산가족 방문단의 건강문제로 의료진과 지원팀들이 긴장.

그러나 李씨는 병원치료를 받고 난 뒤 다행히 건강을 회복, 호텔로 돌아가 북측 가족들을 만나 전날 못다한 얘기를 하는 등 모든 일정에 참여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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