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제설봉사단, 그들의 삽날에 눈길이 뚫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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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폭설’ 녹인 작은 영웅들

5일 오후 서울 상암동 월드컵파크 4단지 앞 도로가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중·고등학생 10여 명이 저마다 삽과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어내고 있었다. 보충수업에 갔다 오느라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도 눈에 띄었다. 삽 놀리는 손짓은 서툴렀지만 눈 치우는 속도는 어른 못지않았다. “야, 내가 더 빨라.” 경쟁하듯 눈을 퍼내는 학생들의 얼굴에 장난기가 묻어났다.

유례 없는 폭설에 중고생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 마포구청이 관내 중고생 4000여 명에게 ‘눈 치울 자원봉사자 모집’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은 4일 오후 2시. 지자체 인력으로는 도저히 눈을 다 쓸어내기가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SOS를 친 것이다. “겨울방학 중이긴 하지만 과연 얼마나 참여하겠어….” 구청 측은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걸려온 신청 전화만 100여 건에 달했다.

5일 삽을 들고 거리로 나온 전장혁(18·배문고 2년)군은 “친구들 얼굴도 보고 도로도 치우기 위해 일곱 명이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송나은(17·상암고 1년)양은 “어제 미끄러운 눈길에서 고생을 한 기억이 나 봉사 활동에 참가했다”고 했다. 학생들은 이날 연남동·성산동·상암동 등 16개 동에 배치됐다. 이들 대부분은 제설차가 진입할 수 없는 좁은 이면도로의 눈을 쓸었다. 밤사이 얼어붙은 빙판을 깨부수는 것도 이들의 몫이었다.

박도식 마포구 자치행정과장은 “기계가 들어가지 못해 손으로 눈을 치울 수밖에 없는 지역이 골칫거리였는데, 한꺼번에 100여 명의 학생들이 나서서 큰 도움이 됐다”며 “이런 일을 해보지 않은 학생이 많았지만 진지하고 열심히 일을 해 줬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나서자 기대 밖의 성과도 생겼다. 어른들이 “아이들까지 나서는데…”라며 일손을 거든 것이다. 상암동 월드컵파크 아파트 앞 도로에 빗자루를 들고 나온 주민 정선화(52·여)씨는 “어린 친구들이 눈을 쓰는 걸 보고 가만있을 수가 없어 나왔다”며 “동네 주민들도 여럿 가세했다”고 말했다.

신영섭 마포구청장은 “기록적인 폭설이라 눈을 치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계기로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눈을 치우게 돼 조기에 제설 작업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현택 기자 ,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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