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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강국, 과연 축복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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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에 우리나라가 세계의 디지털계를 이끌 강국이 될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브로드밴드 보급률이 가장 높고 이를 이용한 초고속 인터넷이 국민 생활 구석구석에 파고들면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변화도 자세히 소개됐다. 이 무렵 캐나다에서는 인터넷과 컴퓨터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53세의 짐 설커스는 매니토바주 주도 위니펙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평범한 남자였다. 2002년 11월 어느 날 밤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 깨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사망 사고일 것 같았던 그의 죽음이 화제가 된 것은 그의 시신이 그가 죽은 지 거의 2년 만인 지난 8월 25일 미라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미라로 변한 것은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가 복용하던 다량의 약물이 체내에 축적돼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라는 검시 결과가 나왔다.

시신이 미라로 변한 것도 화젯거리였지만 세인을 더욱 의아하게 만든 것은 그의 죽음이 대도시에서 2년 동안 알려지지 않고 지나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그는 사람을 기피했던 성격의 소유자였고 관계가 소원했던 가족들과도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남자의 죽음을 모른 채 지나칠 수 있도록 만든 주범은 컴퓨터와 인터넷이었다. 장애인 판정을 받은 그는 정부에서 장애연금을 받았는데 인터넷을 통해 자동적으로 자신의 은행계좌에 입금됐고, 전기.전화.TV시청료 등은 또 거꾸로 인터넷을 통해 자동 지불됐다. 이 때문에 그는 가상공간에서 죽은 뒤에도 각종 공과금을 꼬박꼬박 지불하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그의 수명을 2년 가까이 연장해 놓은 것이다.

과학기술의 축복 속에는 항상 부작용이 숨어 있다. 우리는 흔히 축복 속에 가려 있는 부작용을 인정하지 않거나 과소평가해 왔다. 자동차로 인한 매연, 소음, 도시 팽창 같은 부작용은 자동차가 가져다 주는 편안함과 스피드의 축복 속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인터넷의 부작용은 자동차나 다른 현대 기술문명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파괴적일 수 있다.

인터넷이 막대한 양의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수월하게 만들고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든지 즉석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축복을 가져왔지만 바로 그 같은 인터넷의 특성 때문에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며 정감 넘치는 대화의 기회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인터넷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시간을 집이나 닫힌 공간에서 홀로 있게 만들고,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늘리는 대신 가족이나 이웃 간의 의미 있는 만남이나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배제해 전통 가족관계나 지역사회 구조를 파괴한다. 우리는 현재 게임이나 채팅, 즉석 만남 등 인터넷을 통해 가능하게 된 각종 새로운 서비스를 마치 축복인 양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이들이 장기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강국이 된다는 것은 더 많은 국민이 가상현실 속의 소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가상현실 속에서 이뤄지는 서비스는 현실세계의 서비스를 부분적으로밖에 대체해 주지 못하는 불완전한 것들이다. 인터넷 기술이 더욱 발달해 가상 음식, 가상 물, 가상 공기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먹고 마시면서 우리의 생명과 건강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지극히 불확실하다.

인터넷 강국으로 묘사된 우리나라의 이미지와 죽은 뒤에도 망령처럼 사이버 공간을 떠돌던 짐 설커스의 이미지가 한데 겹치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탁광일 생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