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긍정적인 밥' 중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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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시 한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X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함민복(38) '긍정적인 밥'

어느날 시인은 바다같이 넓은 마음이 된다. 시집 한권의 인세면 굵은 소금이 한 됫박, 시집 한권 값은 국밥 한 그릇, 시 한편이면 쌀이 두 말…. 참 계산도 척척 잘하고 있다마는 그런 계산법으로 시인이 배부를 수도 있는 것이구나 여겨지기도 한다마는 왜 함민복의 풀먹는 토끼같은 눈이 자꾸 떠올려지는 것인지. 나는 바다가 못되어 이 시를 읽다가 마음이 상하고 있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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