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 잘못 찾은 사기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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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개업한 법무사 김학민(49.사진)씨 사무실에 지난달 21일 임모(51)씨 등 두 명이 찾아왔다. 임씨 등은 "수원시 영통에 있는 시가 70억원짜리 땅 1400여평을 담보로 사채업자에게 5억원을 빌리려고 하니 근저당을 설정해 달라"며 등기권리증과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1982년부터 96년까지 검찰에서 조사업무 등을 담당했던 김 법무사는 임씨 등이 내민 땅 등기권리증을 유심히 살폈다. 이때 등기권리증에 찍힌 수원 동부등기소의 확인 도장에 '1994년'이라고 표시된 부분이 김 법무사의 눈에 확 들어왔다.

수원 동부등기소가 개소된 것은 2001년이었는데도 버젓이 94년에 등기권리를 해 준 것으로 돼 있었던 것이다. 서울남부지검 형사부 등에서 사기 사건 등을 처리한 경험이 많은 김 법무사는 이들이 사기단임을 직감했다. 그는 태연하게 "내일 찾아오면 근저당 설정에 필요한 서류를 마련해 두겠다"며 임씨 등을 돌려보냈다. 김 법무사는 곧 서울중앙지검 수사3과에 이를 신고했고, 검찰은 다음날 법무사 사무실을 찾은 임씨 등을 붙잡았다.

검찰은 임씨와 김모씨를 사기 미수 혐의로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들은 위조한 등기권리증 등을 이용해 근저당을 설정받은 뒤 모 캐피털 회사에서 5억원의 대출금을 챙기려 한 혐의다.

검찰은 사건의 주범 서모(40)씨를 검거하기 위해 전북 익산의 서씨 집을 찾아갔지만, 서씨는 공범들이 붙잡힌 소식을 들은 뒤 23일 새벽 유서를 쓰고 목을 매 자살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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