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민중운동가 서 로벨또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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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 대사관 앞에서 자신의 조국인 미국을 향해 '매향리 폭격 반대' 를 외치면서 연행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린 이 시대의 양심을 잃었습니다. "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 지난달 29일 새벽 직장암으로 타계한 서 로벨또(65.본명 로버트 스위니)신부 추도식에서 문정현 신부가 추도사를 읽어내려 가자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 주민 등 참석자 2백여명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땅에서 36년간 '벽안(碧眼)의 벗' 으로 살다간 로벨또 신부의 삶은 소외된 민중들을 위한 봉사, 그 자체였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빈민운동을 하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을 때도 당당하게 맞선 그였다. 1935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고인은 5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64년 한국에 사제로 부임해 전남 소록도 성당에서 4년간 선교활동을 벌인 뒤 목포.부산 등지에서 활동하며 자애로운 신부로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선교사이기 전에 '민중(民衆)' 임을 자처했던 그는 87년부터 충남 당진에서 농민으로 살기도 했다.

신념에 찬 고인의 인생이 가장 강하게 투영된 현장은 바로 매향리였다. 그는 매향리 주민들이 미국 폭격장으로 인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매향리 집회가 경찰의 원천 봉쇄로 막히면 5㎞가 넘게 논길을 걸어서라도 집회에 참석하곤 했다.

또 지난해 11월 이후부터 매달 미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개정 요구 집회에 단 한 차례도 빠진 적이 없었다.

그는 지난 6월 미 대사관 앞 집회에서 연설하던 도중 자신이 집회에 참석하게 된 동기를 이같이 밝혔다.

"나는 신부로서, 크리스천의 한 사람으로서 사람과 자연을 파괴하고 괴롭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곳에 왔습니다. 미국이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한국 사람을 괴롭히고 때리고 있어요. 이건 말도 안됩니다. "

그를 곁에서 지켜봤던 메리엄 신부는 "신부님은 몸과 마음이 가난하기를 스스로 원하셨죠. 특히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열정적인 사람이었어요" 라고 회고했다.

5년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던 주부 金옥수(43.서울 성북구 돈암동)씨는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사고 당시 신부님이 삶에 대한 희망을 심어줘 절망을 극복할 수 있었다" 며 "옳은 일을 하다가 행복하게 생을 마감하신 신부님에게 축복이 있길 바란다" 고 추모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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