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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2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27. 판소리 제자들

나는 우황청심원 CF 출연료 전액을 모 대학 국악과에 장학금으로 맡겼다. 아직도 까마득한 득음(得音)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 오느라 후학을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칭찬도 인색하고 다소 엄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는 별로 제자복이 없는 것 같다.

멋도 모르고 판소리를 배우겠다고 부모 손에 붙들려 오는 학생들도 있지만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는 법이다. 가망성이 없으면 아예 처음부터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만 돌려보낸 사람도 숱하게 많다. 소리 한가락 들어보고 희망이 없다 싶으면 당장 돌려보낸다.

야속해서 뒷통수에 대고 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소리는 취미로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처럼 팔십이 넘도록 평생을 바쳐도 모자라는게 판소리의 세계가 아닌가.

요즘에는 판소리를 할 때 목자랑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옛날에 우리 선생들은 소리를 할 때 귀신을 울려야 한다고 했다.

귀신이 우는 소리를 귀곡성(鬼哭聲)이라고 하는데 정읍 출신 박만순 명창이 '춘향가' 의 옥중 장면에서 꿈에 만난 귀신 대목을 부를 때는 관객들이 무서워서 하지 말라고 말리기까지 했다.

요즘 후배.제자들의 소리가 점점 되바라져 가는 느낌이다.

선생 소리 흉내내는 것이 고작이다. 제자들에게 "와서 연습 좀 하거라" 하면 바빠서 못 오겠다는 사람도 있고….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득음 했다고 해서 목재주만 믿고 얼굴이나 팔리는 공연에만 힘쓰고 공부를 게을리 하면 소리꾼은 망한다.

자나깨나 틈만 나면 연습을 하고 목을 써야만 제소리가 나오는 법이다. 하루에 2시간이라도 꾸준히 하는게 중요하다.

헐벗고 굶주리던 옛날에도 소리 하나 만큼은 열심히 했는데 요즘은 대학만 들어가면 연습도 하지 않고 소리도 점점 볼품이 없다.

목재주 하나 믿고 까부는 사람보다 노력형의 소리꾼이 더 믿음직스럽다. 나는 제자들에게 소리꾼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고 강조한다.

나더러 '욕쟁이 영감' 이라고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한마디 욕도 안 하고 매도 들지 않는다.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때가 이르면 자신이 어느 정도 위치에 도달했는지 슬그머니 일러줄 뿐이다. 판소리 제대로 못 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몸을 바쳐 연습에 매진하라고 입버릇처럼 타이른다.

또 가령 '적벽가' 를 배운다면 원작에 해당하는 '삼국지' 를 열심히 읽으라고 권한다.

몇 안되는 제자들 중에 국립창극단에서 만난 이정일(50)은 요즘에는 소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 연락이 통 없다. 강정자(58)는 국립국악원 양성소 출신으로 1978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나에게 배웠다. 요즘 배우는 남자 제자 중에는 여창선(30)이 있다.

강원도 출신으로 고교 졸업 후 소리를 배우겠다고 무작정 날 찾아온 김양숙(35)은 17년째 내 문하생으로 있다.

한양대 국악과 3학년때 '적벽가' 를 완창한 실력파다. 적벽가를 이만큼 해내는 이도 드물다. 성음(成音)이 맑아 대성할 그릇이다.

공주에 있는 박동진판소리전수관에 아예 신혼 살림을 차려 살면서 나를 친아버지처럼 생각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적벽가 한 바탕을 모두 이수해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후보로 올려놓았다. 한양대와 전남대에 출강하면서 공주에서도 가르친다.

판소리는 한 바탕을 제대로 배운 다음에 다른 소리를 보태는 식으로 자기 소리를 만들어가야 한다. 김양숙도 한양대 대학원에서는 고 김소희 명창을 사사해 소리 견문을 넓혔다.

박동진 <판소리 명창>

정리=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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