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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인터뷰 - 6일로 취임 100일 맞는 정운찬 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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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운찬 국무총리가 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취임 100일을 맞은 소감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속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사고를 좀 더 넓히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더 많이 나눠야 되겠다고 반성했다”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정부는 11일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다. 정운찬 총리는 3일 중앙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어떤 기업, 어떤 대학, 어떤 연구소를 (세종시에) 유치했다거나, 유치할 것이다는 식의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발표 내용이) 상당히 구체성을 띨 것”이라고 말했다. 또 “행정부처 일부를 내려보내는 안은 내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정부 관계자는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그곳에 입주할 기업이나 대학 명단을 공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정 총리는 “수정안이 나오면 (원안 추진을 주장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안을 설명하고, 제 마음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수정을 낙관하느냐’는 질문에 “낙관한다기보다 비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여야 의원들을 다 만나러 다니는데, (이 대통령도) 반대하는 분들과 더 많이 대화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이상일 정치데스크
백일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1월 6일로 취임 100일이 된다. 가장 잘한 일은.

“잘했다기보다 가장 기쁜 소식은 용산 사건이 해결된 거다.”

-무슨 역할을 했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중재에 나서달라고 했다. 대통령께도 ‘인간적으로도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고, 연말을 넘기면 정치적 부담이 되니 빨리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많이 도와주셨다. 적어도 두세 번 관계자들에게 전화해 빨리 해결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학자(경제학)를 하다 행정을 해보니 어떤가.

“산속에 있다 속세에 온 거다. 학교에 있을 때는 소통과 대화를 잘 했다고 자부했는데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실에 와서 보니 만날 사람이 너무 많아 소통과 대화가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잘 안 내는 것 같다.

“경제부처가 잘 하고 있어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앞으론 경제문제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

-마음고생한 문제가 있다면.

“세종시와 용산 문제로 마음고생은 했지만 더 어려운 건 소통하는 거다. 우선 (행정부에서) 쓰는 용어가 다르더라. ‘설득’ 대신 ‘이해와 협조’라는 말을 써야 하고(박 전 대표를 ‘설득’하겠다고 했다가 친박계 의원들로부터 ‘가르치려 드느냐’는 비난을 듣고 나서 말조심하고 있다는 얘기). 또 대학에서는 전부 문장으로 소통하는데 공무원들이 가져오는 것은 개조식(짧게 끊어서 요점이나 단어를 나열하는 방식) 보고서다. 그런데 그게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 어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많다.”

-대통령이 총리에게 당부한 것은.

“주신 숙제가 있다. 사교육비 경감, 저출산 문제 해결, 사회 통합 등이다. 올해 한국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과거의 우리는 변방적 사고를 했으나 이제 중심적 사고를 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

-한승수 전 총리는 ‘자원외교 총리’란 얘기를 들었다. 정 총리는 ‘세종시 총리’인가.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세종시 총리라 부르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다른 일도 많이 했는데 서운한 감은 있다. 마담형 총리, 실세형 총리, 대독형 총리, 자원외교형 총리를 떠나 그냥 정운찬형 총리가 되고 싶다.”

-세종시 대안을 11일 내나.

“난산이면 하루 이틀 늦어질지 모르나 그게 목표다.”

-몇 개 기업이 세종시에 가나.

“대기업, 중견기업을 유치하고 싶은데 그림을 그리는 중이라 밝히기 어렵다.”

-플랜 B(행정부처 일부가 가는 것) 얘기도 있지만 플랜 A(행정부처 아예 안 가는 것)로 가는 것 아닌가.

“행정기관 일부가 간다는 것은 행정 반이 간다는 것과 똑같은 얘기다. 정부는 그런 안은 내지 않을 거다. 플랜 A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 의원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세종시법을 고칠 수 있을까.

“진정성을 갖고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박 전 대표가 강조하는 신뢰의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신뢰의 중요성을 일관성 있게 강조하는 것은 존경한다. 하지만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달라서 실험에 신중해야 하는데 중앙부처가 분할된다면 나라의 장래가 어둡다.”

-세종시 수정을 위한 법 개정안은 2월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목표를 잡고 있나.

“가부를 빨리 결정하는 게 좋다. 질질 끄는 것은 충청도민에게 예의가 아니다.”

-대통령이 ‘총리는 지시받아 하는 것’이라고 말한 뜻은.

“대통령께서 지시라는 단어는 쓰지 않으셨다고 들었다. 세종시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말씀으로 읽고 저는 힘을 더 얻었다. ”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한 다른 사례는.

“4대 강 사업에 대해 일부 여론은 속도를 조정하자는 뜻도 있다고 말씀 드린 적 있고,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좀 더 하셨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정 총리에게 ‘관치금융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나만큼 금융 자율화를 많이 주장한 사람은 없을 거다. 내가 시장 만능주의자는 아니지만 금융 자율화 문제에 대해선 오랫동안 공부해 왔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KB금융지주회사 강정원 회장 내정자가 사퇴한 건 관치금융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머뭇거리다 더듬더듬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겠다. 내가 다른 일로 바빠서 팔로업(follow up·문제를 챙긴다는 뜻)을 못했다. 보고도 받지 못했다. 디테일(detail·자세한 내용)을 잘 모르니 말씀 드리기 어렵다. 원론적으론 금융 문제는 금융인이 해결하는 게 좋다.”

‘지금 학자라면 그렇게 말하진 않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정부에 들어오니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대꾸했다. 그래서 화제를 돌렸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생각은.

“불우한 사람을 배려하는 입학사정관제는 좋지만 그런 입학사정관제는 예외적인 것이다. 입학사정관제가 원칙이고 공부가 예외인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께 ‘너무 빨리 하면 부작용이 많을 테니 드라이브를 너무 걸지 마십시오’라고 말씀 드렸다.”

-대통령직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데 이유는.

“총리 하느라 바쁘다. 굳건한 아이디어와 정치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서 2007년에 (대통령 꿈을) 접지 않았나.”

-국정을 성찰할 시간 있나.

“솔직히 겨를이 없었다. 앞으로는 일정을 반 정도로 줄이려고 한다.”

-최근 읽은 책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내가 번역한 책 『소리없는 혁명:중앙은행의 현대화』(앨런 블라인더 저)를 다시 읽었다. 국회 정무위와 기획재정위가 한국은행법 개정을 놓고 싸운다는 얘길 듣고 책을 펼쳤다.”

-부인 최선주 여사는 어떻게 내조하나.

“내 이름이 나오는 비판 기사를 스크랩해서 보여준다. 칭찬하는 것 봐서 뭐하느냐, 비판을 듣고 고치라는 뜻에서 그렇게 한다. 반면 아들·딸은 내가 고생하는 게 안타까운지 긍정적인 기사를 알려준다.”

-국회에서 의원들 겪으며 뭘 느꼈나. 실망하지 않았나.

“열정적인 건 높이 사야 한다. 공부 많이 하고 깊이 있는 질문도 많이 한다. 실망한 점은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는 것, 지엽적인 것을 꼬투리처럼 문제 삼는 것이다.”

-예산안 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12월 31일 참 착잡했다. 내년에는 투쟁을 해도 미리 투쟁해서 법적으로 정해진 기일까지 (예산안 처리를) 끝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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