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넘쳐나는 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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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물은 귀하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물이 넘쳐 홍수를 이루면 물을 마실 수 없게 된다. 성(性)이란 것도 인간에게 귀하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넘쳐서 홍수를 이루면 진정한 성의 축복을 맛볼 수 없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성이란 구토와 같고 배설과 같을 뿐이다.

*** 이성 흐리는 음란영상물

지금은 바로 성의 홍수 시대를 맞고 있는 느낌이다.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와 같이 문자로 이뤄진 성의 담론은 그래도 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음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 반 훌릭의 저서 '중국 성풍속사' 도 문자로 이뤄진 성의 역사이기 때문에 일종의 개안(開眼) 체험을 하게 한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될 뻔했던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도 어떤 대목에 가서는 '때론' 가슴을 저미는 듯한 감동을 받게 한다.

문자로 이뤄진 성의 담론과 성에 관한 묘사가 전적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영상문화에 비해선 덜 자극적이라 할 수 있고 그런 면에서 덜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영상의 형태로 넘쳐나고 있는 성의 홍수 사태다. 가장 염려스러운 구석은 인터넷이라고 하는 고상하고 현대적인 이름으로 다가오는 음란의 홍수다.

인터넷이 아니라 인터코스넷이나 섹스넷, 쓰레(기)넷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 무수한 사이트들이 청소년들과 성인을 덮치고 있다.

얼마 전에 미국의 어느 신학교 학장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가 컴퓨터 하드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음란한 사진들을 즐겨 본 것이 들통나 창피를 당한 적이 있다.

신학교 학장이요, 목사요, 신학자인 사람이 이런 판국이니 필자를 포함해 일반인들과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타고 오는 음란의 홍수를 막아낸다는 것은 보통 의지를 요하는 일이 아니다.

영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문자로 다가오는 것과는 달리 판단 과정 내지는 사유 단계를 뛰어넘어 막바로 감각을 자극한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감각의 자극은 앞을 내다보는 직관을 흐리게 한다. 예를 들어 '경국지색(傾國之色)' 이라 할 때 색(色)은 감각에 해당하는 것이요, 경국(傾國)은 직관에 해당하는 셈이다. 색이라는 감각에 빠져 나라가 망할 것을 내다보는 직관이 흐려지는 것이다.

요즈음 텔레비전 영상매체에서도 입담으로 풀어가는 성의 담론들이 때를 만난 듯이 활개를 치고 있다. Y담의 공영화라고 할 만하다.

그렇게 방송에서 성적인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시시덕거리고 있는 동안,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변호사가 여고생과 원조교제를 하러 자가용을 몰고 나가고, 미국물을 먹은 동포 여대생들이 버젓한 집안의 자식들과 마약 섹스 파티를 벌이려 호텔을 찾아든다.

2백16명의 여성들과 관계를 맺은 한국판 카사노바는 고소하는 여성이 한 사람도 없어 재판정을 유유히 걸어나온다.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의 단란주점과 룸살롱들은 불야성을 이루며 음란의 술잔을 기울이고, 나라를 이끄는 지도층들이 미모의 로비스트에게 놀아나 희극적인 로미오가 된다.

*** 도덕성 회복운동 펼쳐야

전국토의 포르노화가 이뤄지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천국의 신화' 를 꿈꾸던 유능한 만화가만 모호하게 전과자가 되어 '지옥의 신화' 를 그리고 있다. 그야말로 소돔과 고모라가 재현되고 있는 듯한 작금의 상황은 신화적이라 할 만하다.

신화가 아닌 다음에야 현실에서 이토록 성과 음란이 넘쳐날 수 있는가. 지금 우리나라의 장래를 결정짓는 문제는 구조조정 같은 경제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해이, 그 중에서도 성적인 음란이라고 감히 단정한다.

가슴을 찢는 내면의 개혁과 생활의 개혁 없이는 우리나라의 장래도 없고 남북통일도 없다. 남북통일을 하여 북한을 포르노화하겠다는 것인가.

고리타분한 제안 같지만 성과 음란의 홍수를 막는 둑을 쌓기 위해 새도덕 운동 내지는 양심회복 운동이 참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시민운동이 국회의원 낙선운동보다 더 도전적이고 대대적인 운동으로 일어나야 할 것이다. 하긴 시민운동가마저 음란의 그물에 걸려들었으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말이다.

조성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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