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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한국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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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필자는 그 원천을 세 가지라고 본다. 우선 단결력과 협동정신을 들 수 있다. 재작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외국 기관들이 급속히 투자자본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급속히 호전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라고 설득했지만 이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전문가들도 있었다. 대부분 한국의 주요 산업시설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들이 한국을 방문해 산업공단을 견학하도록 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일정을 마친 후 본사로 돌아가서 한국에 대한 투자 한도를 두 배로 늘렸다. 산업시찰 당시 광양의 포스코, 거제도의 대우조선해양, 창원의 두산중공업 등은 마치 하나의 회사가 된 것처럼 움직였다. 자신들끼리 서로 연락하면서 차량과 헬리콥터는 물론 여타 지원들을 일사불란하게 효율적으로 제공했다. 외국인 전문가들은 한국인의 이 같은 자발적인 단결력과 협동정신에 경탄을 그치지 않았다. 한국은 하나의 주식회사(Korea Inc.)이며 초(秒) 단위의 작업환경(clockwork operation)을 갖고 있다고 격찬했다. 단결력과 협동정신은 위기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외환위기 때의 금 모으기, 오염된 태안반도에서의 자발적 봉사 등은 단적인 사례다.

한국인에게는 또 특유의 강인함이 있다. 시련과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다. 15년 전 삼성전자가 할리우드의 뉴리전시 영화제작사를 인수 작업할 때 관여한 적이 있다. 잘나가던 협상이 갑자기 깨질 뻔했다. 삼성 측에서 “영상사업단의 과장들이 워너브러더스 영화사에서 9개월간의 직무연수(OJT)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추가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이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난색을 표명하던 할리우드는 삼성의 끈질긴 요청에 철칙을 무너뜨렸다. 삼성의 젊은 과장들이 워너브러더스에 와서 영화 제작·배급의 귀중한 지식과 경험을 쌓게 된 것이다. 삼성영상사업단이 분사(分社)되고 난 후 이들이 한국 영화산업을 할리우드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열을 들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가 오바마 대통령과 만찬할 때의 일화를 필자에게 소개해준 적이 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10대 경제학자를 백악관 만찬에 초청했다고 했다. 그런데 열 명의 학자 모두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뒤늦게 이를 알아채고 파안대소(破顔大笑)하면서 “역시 교육이 관건”이라고 결론 지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인의 교육열은 그런 유대인 못지않다. 미국 대학에 공부하는 외국계 학생 중 한국계 숫자는 지난 15년간 단연 1위다. 한국에서 합작기업을 경영해 본 외국인 경영진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한국인 기술자들은 배우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아예 머리 뚜껑을 열고 삽으로 주워 담아 넣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외국 기업 따라잡기만을 10여 년 한 후 언젠가부터 ‘세계 1등’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조업 분야에만 머물지 않는다. 야구·골프·음악·미술·빙상·의학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를 이끌어 가는 한국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교육투자와 기러기 아빠의 희생이 큰 몫을 했다고 본다. 천연자원은 없는 나라이지만, 절대 도둑 맞을 일이 없는 머릿속의 재능이 뛰어난 나라. 천연자원과 달라서 쓰면 쓸수록 늘어나는 재능과 위기극복의 지혜가 한국의 오늘을 있게 한 원천이 아닐까.

이런 강점을 바탕으로 새해에는 한국의 금융산업이 글로벌 수준으로 발전하기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중재적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융성하고 있는 중국과 상생발전하기를, 유연하게 재도약할 미국과의 파트너 관계가 더욱 공고해지기를 기원한다.

김수룡 도이치은행그룹 한국 회장 미공군협회 미그앨리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