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의장 담장넘어 '탈출'후 다시 붙들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25일 오후 5시쯤 집 밖으로의 탈출에 잠시 성공했던 김종호 국회 부의장이 한나라당 이재오.김문수 의원에게 이끌려 집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세 사람 모두 계면쩍게 웃었다.

金부의장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합작해 이날 하루 연출한 '감금→탈출→재감금' 소동은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 쥐도 새도 몰랐다〓25일 오후 1시20분쯤 金부의장은 마포 서교동 자택의 부엌 옆 다용도실에 몰래 숨어들어갔다.

40여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金부의장이 시켜준 자장면을 먹고난 뒤 TV골프중계를 보며 쉬느라 눈치를 못챘다.

다용도실 창문의 방충망은 비서진이 이미 뜯어놓은 상태. 60㎏을 조금 넘는 체중에 1m62㎝의 키인 金부의장은 재빨리 창문을 통과했다. 평상복 차림에 주방용 슬리퍼를 신은 채였다.

金부의장 집안에서 담장높이는 1m. 하지만 집 밖 길에서 재면 2m가 넘는다. 높은 대지 때문이다. 65세의 金부의장은 여기를 뛰어내렸다. 金부의장은 미리 양해를 구해둔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실 2층 쪽방에 숨었다.

잠시 후 거실에 있던 한나라당 최병렬 부총재가 "부의장이 안 보인다" 고 했다. 화들짝 놀란 한나라당 의원들이 집 안팎을 샅샅이 뒤지며 수색작전을 폈다. 잠겨 있던 안방문을 열기 위해 열쇠수리공까지 불렀다. 일부 의원은 이웃집 지붕에 올라가면서 법석을 떨었지만 金부의장의 종적은 묘연했다.

한 의원은 "金부의장이 점심 때 '자장면밖에 대접하지 못해 죄송하다' 며 이방저방 돌아다녔는데 결국 눈속임이었다" 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남아 있던 자민련 김학원 대변인을 잡았다. 본회의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 "자장면은 싫어" 〓빠져나간 金부의장은 휴대폰으로 자민련 원내총무실과 계속 연락을 취했다. 날이 어두워지면 쪽방을 빠져나와 국회로 간다는 게 당초의 계획. 그러나 오후 4시55분쯤 용변을 보러 쪽방 옆 샛길에 있던 화장실에 잠깐 들른 게 치명적 실수였다.

"절대 멀리 못갔다" 는 확신 아래 이재오 의원의 지휘로 세시간 넘게 주변수색을 벌이던 한나라당 사무처 尹모씨에게 발각된 것. 즉각 尹씨가 "같이 가시죠" 라며 붙잡았고 金부의장은 "이거 왜 이래" 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몰려온 한나라당 의원.당직자들 10여명에게 잡힌 金부의장은 무안했던 듯 "우리 기사 어디 갔나" 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한나라당 의원.당직자의 표정엔 천만다행이란 안도감이 흘렀다. 박희태 부총재는 金부의장과 10여분간 단독면담한 뒤 "金부의장이 '도주한 게 아니라 잠깐 옆집에 갔다 온 것일 뿐' 이라며 '결백' 을 주장했다" 고 전했다. 이후 한나라당의 감시태세는 두배로 강해졌다.

저녁식사 메뉴를 놓고 이병석 의원이 "자장면 먹다가 망할 뻔했다. 절대로 자장면은 안된다" 고 주장해 많은 의원들이 볶음밥을 시켰다. 사태 전말을 보고받은 자민련 오장섭 총무는 "그 양반 조금만 더 참지" 하며 혀를 찼다.

김정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