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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휴대폰규제 빠를수록 좋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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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버스.택시.화물차 등의 운전 중 휴대폰 사용규제 조치가 벽에 부닥쳤다. 건설교통부는 당초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을 고쳐 이들 사업용 자동차의 운전 중 휴대폰 사용을 7월 말부터 규제하고, 위반시 과태료 20만원을 부과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지난 19일 심의에서 건교부가 낸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심의를 보류했다.

"휴대폰 규제는 경찰의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좋다" 는 명목이었다. 경찰의 제안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게다가 이 위원회는 다음 심의일조차 잡지 않아 건교부의 휴대폰 사용규제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때문에 도로교통법을 고쳐 규제를 하려면 일러도 내년 상반기 중에나 가능할 판이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올 가을 정기국회를 통과한 뒤 유예기간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은 건교부장관이 고쳐 시행하면 된다. 사업용 차량 운전자들의 운전 중 휴대폰 사용이라도 우선 금지해 교통사고 위험을 그만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운전 중 휴대폰 사용은 귀중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개혁위원회와 경찰의 태도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운전 중 휴대폰 사용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이런 유형의 교통사고는 1996년 8건에서 1999년 1백6건으로 부쩍 늘었다. 무려 13배나 되는 증가세다.

선진국들은 이미 운전 중 휴대폰 사용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 교통안전국은 최근 휴대폰과 차내 TV.내장 컴퓨터 등 운전자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장치들로 인해 교통사고 위험이 여느 때보다 높다고 경고했다.

안팎으로 이런 실정이니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등 단체들의 반발은 당연하다. 시민단체들은 사업용 자동차의 사고율이 일반 자동차보다 4배 이상 높다는 점을 강조하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휴대폰 규제는 빠를수록 좋다. 설령 시민단체들의 요구와 지적이 없었다 해도 운전 중 휴대폰 사용에 따른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규제 시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법규 일원화의 필요성 등 위원회의 개정안 보류 이유가 논리상 틀리지 않지만,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보다 더 시급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손쉬운 운수사업법 시행규칙부터 고쳐 60만대에 육박하는 사업용 차량을 우선 규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 다음 도로교통법을 고치고 차후 법을 정비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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