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지방의회] 충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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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0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안길에서는 이 고장 지방의회에 대해 준열한 경종이 울렸다. 15개 시민단체가 참가한 '의정참여시민연대' 가 도의회 의장단선거 금품수수 사건을 문제삼아 관련자 사퇴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 시민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지방자치 부활 10년째. 넋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충북도내 지방의회는 아직 시민들의 냉소.지탄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질부족에 따른 비능률은 물론 스스로 위상을 실추시키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 자질시비=의원들의 자질 중 가장 문제되는 것이 전문성 부족이다. 경험과 지식이 빈약한 상태에서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은 애초부터 기대난이었다.

예산안 심의나 행정사무감사가 아직도 겉핥기라는 지적이다. 제.개정 조례 중 10% 안팎에 불과한 의원발의 비중이 이를 뒷받침한다.

도의회에서는 "LAN(근거리통신망)이 도대체 뭐냐" 고 묻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두번째는 도덕성. 도의회의 경우 최근 의장단선거 과정의 금품수수사건과 관련, 모두 5명이 구속됐다. 간통혐의로 피소된 의원이 있는가 하면 4대와 5대 때는 모두 3명이 변호사법위반, 불법수렵, 도박 혐의로 사법처리돼 의원직을 내놓았다.

군의원 중에는 입찰정보를 빼냈다가 구속된 사례도 있었다.

◇ 흔들리는 위상=집행부와의 올바른 관계 설정과 주민의 아픈 곳을 제대로 긁어주려는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집행부의 발목을 잡고 '본떼를 보여야' 대접받는다는 인식으로 감정적 힘겨루기에 몰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청주시의회가 1996년 시장의 "의원은 동(洞)대표" 라는 발언에 발끈해 공약사업 예산을 전액삭감했는가 하면, 도의회가 의원간 갈등의 결과로 청주공예비엔날레 지원예산 3억원을 깎기도 했다. 보은군의회는 러브호텔 규제 조례를 부결시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한 광역의회와 기초의회간의 따로놀기, 지방의회간 대립도 과제다. 96년 청주시의 숙원인 광역쓰레기매립장사업에 대한 청원군의회의 '백지화 결의문' 채택이 한 예다.

이밖에 염치불구하고 자기지역구 이익챙기기에 나서는 행태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가 됐다.

지난 6.8 보궐선거에서 14~18%에 불과한 투표율은 지방의회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그만큼 의회가 주민들의 관심권 밖이라는 얘기다. 이는 의원들의 자질과 맞물려 의회무용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 비능률과 낭비=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의회무용론이 서슴없이 나온다.

9년간 도내 지방의회의 경상경비 예산과 의회 청사 신축경비가 약 2천억원에 이른다는 점과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의회를 설득해 승인을 얻어내는데 들어가는 행정력 낭비가 의회의 순기능을 압도한다는게 논거다.

시어머니를 대하는 집행부의 투정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실제로 대구의 한 연구소 설문조사 결과 기초의회 폐지의견이 82.7%나 나오기도 했다.

도의회는 당초예산에서 삭감된 항목은 추경에 다시 올라와도 무조건 깎아버린다. 긴급성이나 합리성보다는 권위가 예산심의 기준이 되고 있어 효율을 해치기도 한다.

형식적인 해외연수도 여론비판의 단골메뉴다. 또 97년 '근검절약 실천 결의안' 까지 채택한 충북도 의회가 지난 6월 5천7백만원을 들여 방음시설을 명목으로 의장실을 호화판으로 뜯어고친 것도 주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청주=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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