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아름다운 성' 자막으로 시청흐름 끊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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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지난 연휴를 TV와 함께 보낸 시청자 중에는 브라운관에 쉴새 없이 쏟아지는 자막에 짜증이 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TV의 과도한 자막사용이 새삼스런 일이 아니지만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추세다.

매주 토요일 밤 11시50분에 방송하는 SBS 토요스페셜 '아름다운 성' (연출 박정훈)은 이런 자막방송의 공과(功過)를 짚어보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지난 4월 말 시작한 '아름다운 성' 은 일반인들의 성 얘기를 브라운관 앞에 과감하게 공개한 실험적인 프로. 침실.술집 등에서 부부 혹은 성인들이 음습하게 주고 받는 성을 당당한 토론으로 끌어올린 기획이 돋보인다. 때론 잘못된 성상식도 교정해주곤 한다.

15일 방송내용도 신선했다. 출산을 앞두거나 이제 막 아빠가 된 기혼남성 다섯명이 나와 임신기간 중 성생활에 대해 얘기했다.

임신기간 부부생활에 대한 막연한 갈등과 불안감, 그리고 극복사례 등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선 자막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출연자의 고백을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화면 아래에 줄줄이 표시했다. 토씨 하나 생략하지 않아 글자를 따라 읽기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출연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였을까. 그렇진 않았다. 출연자가 작은 공간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자막이 없어도 뜻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자막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가슴 속에 담아두고 싶어 하는 부분을 입으로 표출하는 데서 오는 수줍음이나 당혹스러움 등 출연자의 미묘한 표정을 종종 놓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성' 은 흔한 오락프로 같이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장난스런 자막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 점은 건강하다. 그러나 자막이 없어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까지 일일이 글자로 제시해야 할 당위성은 없어 보인다.

박정훈 PD는 "일반인들은 발음이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 자막을 쓸 수밖에 없다. 고육지책이다" 고 말한다.

하지만 이 프로에선 그런 고육지책의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몰래카메라로 찍어 소리상태가 불량한 일부 오락프로나,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만 겨우 들려주는 고발성 다큐멘터리가 아닌 것.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제대로 살리는 보완책이 필요해 보인다.

아무리 정보프로를 표방해도 TV는 영상매체이지 활자매체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야 시청자를 잡아두는 가장 손쉬운 수단인 '자막공해' 에 편승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 것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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