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육훈 역사교사모임 회장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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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육훈 전국역사교육모임 회장이 바람직한 역사교육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환영할 일이지만 고구려사만, 한국사 교육만 갑자기 강조하는 건 걱정스럽습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우리 역사와 역사 교육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김육훈(43.서울 상계고등학교) 선생은 이런 분위기를 기대반 우려반으로 지켜보고 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1988년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들의 연구 모임으로 출발했다. 회원수는 2000명으로 전체 역사 교사의 3분의 1에 조금 못 미치는 수다.

김 선생은 87년 교사로 임용됐고 역사교사모임 창립회원이다. 3년전 모임의 회장으로 추대됐다.

김 선생을 만나 최근 이웃 나라들의 역사 왜곡과 우리의 역사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 요즘 왜 이러나.

"복합적 요인이 있겠지만 중국 내적으로는 일단 국민통합 위한 것이다. 예전엔 사회주의라는 것 하나로 국민을 통합했었지만 지금은 이것만으론 안되니까. 지역간.계층간.민족간 사회주의 대체할 새로운 통합 이데올로기가 바로 중화주의. 그 동북아판이 동북공정. '조선족 사회를 중국으로 확실히 편입해야겠다', '간도 분쟁의 소지를 처음부터 없애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중심의 아시아질서, 패권주의가 작용했을 것이다"

-우린 어떻게 봐야 하나.

"중국의 고구려사 문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본질상 다르지 않다. '고구려사를 훔쳐간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한국을 둘러싼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얘기가 아니다. 고구려사만, 한국사 교육만 갑자기 강조하는 건 걱정스럽다"

-학생들 반응은 어떤가.

"'맞짱뜨면 누가 이깁니까?', '선제공격하면 되지 않나요?', '우리도 저들처럼 역사왜곡 하고 말죠'.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워낙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문화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수업하면서 '실제로 우리가 싸워야 하나', '싸움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가 굴러가야 하나' 이렇게 접근하면 학생들도 차분해진다."

-그럼 어떻게 접근하는게 바람직하다고 가르치나?

"고구려사 왜곡만 떼어놓고 하지 말고,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비교해 보는 게 중요하다. 한국은 어떤가도 돌아보고. 우리도 감정적으로 '고구려는 우리 역산데' 이렇게만 할 게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이들의 패권주의, 침략주의, 국익우선주의다."

-우린 문제 없나.

"일본 우익 신문인 산케이 신문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때 '새 역사교과서 만드는 모임 제대로 해라. 한국처럼 확실하게 왜곡해라' 이렇게 주문했다는 일화가 있다. 민족주의.국가주의 강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일본과는 차이가 있다. 두 나라는 침략적 역사의식, 우리는 방어적이다. 그럼에도 굳이 문제를 지적하자면 사실을 왜곡하진 않았지만 역사 해석상 실제로는 작은 것을 확대하고, 큰 것을 축소한 면이 있다. 이를테면 '한국이 일본에 문화를 전파해줬다'는 부분. 교과서에는 '삼국문화의 일본전파', '통일신라 문화의 일본전파'로 별도 단원이 마련돼 있다. 실제로는 일본 고대사에서 상당히 짧은 시기인 아스카 시대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의 영향이 강하다고 볼 수 없다. 반면 친일파 문제 같이 우리 민족의 부끄러운 과거사는 거의 싣지 않았다. 학자들 중에도 이런 점을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 많다. 한국사를 공부하려면 일본사, 중국사 등 동아시아 역사를 다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만 본다. 그래서 심지어 국사를 해체하자는 말도 나온다. 국사를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라 세계사적 맥락에서 한국사를 보자는 얘기다"

-우리 국사 교육 정책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면.

"7차 교육과정 과목선택제 시행 이후 고교에서 시험 볼 때 이과와 실업계는 국사 시험도 안 본다. 국사 과목을 배우는 경우는 문과의 40% 정도. 전체 11과목 중 네 번째 정도다. 전체 고등학생 비율로 따지면 국사를 배우는 고교생은 20%가 채 안된다. 과목선택엔 공통교육과목과 심화선택과목이 있는데 전자에 국사, 후자에 한국근현대사가 들어있다. 수능시험 볼 때는 대개 국사보다는 한국 근현대사를 택한다. 그래도 국사는 그나마 낫다. 세계사 교육은 거의 죽어있는 상황이다. 고교에서 문과만 일부 세계사 배우게 돼 있지만 그나마도 거의 안 한다."

-왜 역사교육이 축소됐을까.

"국영수 중심이 됐기 때문 아닐까. 실용주의적, 도구적 교과를 강조하게 되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교과목들이 전반적으로 줄어들게 된 듯하다. 학생들의 감성을 기를 수 있는 예체능 교과도 마찬가지로 줄었다. 심지어 고교 2학년, 3학년에 체육 수업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미국식은 사회과 시스템으로 사회 안에 역사, 지리, 정치경제가 모두 포함된다. 이 중에도 역사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유럽은 사회과라고 하는 걸 따로 편성하지 않고 역사, 지리교육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국민적 자질 양성하게끔 돼 있다. 미국식이든 유럽식이든 전체적으로 자국사와 세계사의 관계가 매우 가깝다. 세계사를 주도했던 집단들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세계사와 자국사가 융합돼 교육된다. 일본도 세계사와 자국사가 거의 붙어있다. 중학 2학년 역사책의 경우 제목은 역사, 내용은 세계사 속의 일본사다. 중국은 역사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적 높다. 역시 중국사와 세계사의 비중 높고. 전체적으로 역사교육이 강화되는 게 일반적이고, 자국사와 세계사가 비슷한 비중이라는 특징이다."

-역사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역사교육이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 현재 의미가 낮게 평가되는 건 분명하다. 학교도 우리 사회도 우선 눈앞에 보이는 것,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하다보니 도구적인 것들만 강조된다. 역사는 나와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성찰이다. 내가 누구이고 우리 사회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며,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모습은 어떤건지. 이런 의미에서 역사교육이 강조됐으면 좋겠다. 단순히 수업 시수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역사 교육의 내용도 바꿔나갔으면 한다. 국수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한국사와 세계사를 유기적으로 관련짓는 방식이 필요하다. 단편적 지식암기가 아니라 역사를 보는 관점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요즘의 분위기는 한편으론 반갑고 한편으론 걱정스럽다."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대안교과서도 만들었다던데.

"기본적으로 교과서 자체가 재미없지 않나. 대안교과서 만들 때 강조하고 싶었던 건 아이들의 눈으로 본 역사, 재미없고 암기할 것 많은 역사 교과서는 지양하고 싶었다. 평이한 용어, 재미있는 이야기 전개방식으로 서술하려 애썼다. 왕의 업적, 영웅의 역사가 아니라 그 시대 청소년들의 모습, 여성들의 삶 등 구체적이고 생동감있는 역사적 사실을 많이 다루려고 했다. 그래야 이름없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도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김 선생은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은 결국은 평화를 해치는 일이 될 수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교과서 왜곡, 중국의 패권주의와 고구려사 왜곡은 함께 가는 거다. 과거사 얘기만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단순히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의 행위가 실제로 우리와 우리 주변의 평화를 해칠 수 있는 것, 침략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일본의 왜곡 역사교과서 점유율은 0.03%에 불과하다. 훌륭하지 않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나쁜 일본, 나쁜 중국을 물리치자는 건 옳지 않다. 평화를 해치려는 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비판하고, 반대하고,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끼리 협력해야 한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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