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한나라 물 타고, 추미애 뒤집고, 민주당 판 깨고 … 배가 산으로 간 노조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나라당이 물을 타더니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뒤집고, 민주당은 아예 판을 깨려고 한다.”

경영계가 국회의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협상을 지켜보며 터뜨린 불만이다. 12월 4일의 노사정 합의문이 변질된 데 대한 비난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사정이 “13년을 미뤘던 숙제를 해결한 노사관계 발전의 큰 전환점”이라고 자평한 합의문은 여의도 국회 문턱을 넘는 순간 바뀌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8일 의원 전원 명의로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에서 ‘노사 교섭·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등 관련 활동’으로 돼 있던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의 대상에다 ‘통상적인 노조관리업무’를 추가했다. 노사정은 노사 공동활동에 대해 예외적으로 근로로 인정해주기로 합의했지만, 이 개정안은 회계업무나 조합원 경조사 등 일반 노조활동까지 면제 폭을 넓혀줬다. 경영계는 당장 “노사협상 과정에서 노조가 ‘통상 노조관리’의 범위와 관련, 상급단체에 파견되는 전임자 등에 대한 임금도 요구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도부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맺고 있는 한국노총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정치적 해명만 돌아왔다.

민주당 소속의 추미애 환노위원장은 한 술 더 떠 노사정 합의를 부정하며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8인 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26일 회의에서 타임오프의 범위를 ‘노조유지 및 관리활동’으로 더 넓히는 중재안을 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개정안에서 전임자가 임금을 받을 경우 노조를 처벌하는 조항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안팎에서조차 “대권 꿈이 있는 추 위원장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이 와중에 민주당은 한 발 더 나갔다. 추 위원장의 중재안도 반대한 채 “산업별노조는 복수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의 예외로 하고 별도 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를 들고 나왔다. 산별노조에 기반한 민주노총이 기존 노조가 약한 대기업에 세력을 확대하겠다며 내놓은 제안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한국경총 고위 관계자는 28일 “정치권이 산별노조에 특권을 달라는 주장까지 받아주면 어떡하나”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야는 당초 28일 시한도 넘겨 29일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추미애 위원장, 차명진·김재윤·조원진 의원 등 5자회담을 열어 마지막 협상을 한다. 1월 1일에 현행법이 자동 시행되는 파국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노사정 합의는 팽개치고 정치적 이해득실만 앞세운 그들의 욕심 앞에 출구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심지어 귤이 여의도만 넘으면 탱자가 된다는 조소까지 나오는 형국이니 말이다.

정효식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