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온난화 유일 대안” … 원전 르네상스 시대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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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들어 이른바 ‘탈(脫)원전 정책’을 부르짖으며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영국은 지난달 원전 10기를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원자력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에너지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전을 새로 짓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바야흐로 원전 전성 시대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개발도상국은 물론 한때 환경 보호와 방사능 안전 문제를 내세워 원전에서 등을 돌렸던 선진국들까지 다시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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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이 떠오르는 것은 지구온난화와 고유가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CO2)를 제일 많이 내뿜는 곳이 화력발전소다. 이에 비해 원전은 발전 과정에서 CO2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원전을 짓고 연료인 우라늄 광석을 캐서 운반하는 과정에서만 CO2가 나오는 정도다. 심지어 청정에너지의 대표 주자인 태양광·풍력보다 CO2를 덜 배출한다. 발전소 건설과 연료 조달 과정에서 나오는 CO2까지 모두 포함해 생각했을 때 원전은 전기 ㎾h당 CO2 10g을 뿜는다. 태양광은 그 여섯 배 가까운 57g, 풍력은 14g이다. 원전은 오직 수력발전(㎾h당 CO2 8g 배출)에 비해서만 온실가스를 더 배출할 뿐이다.

이로 인해 영국에서 원전 반대운동을 주도했던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스티븐 딘데일 영국 대표조차 원전에 대한 ‘비호감’을 버렸을 정도다. 그는 올 초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와 인터뷰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책이 원전”이라며 “핵 발전소 건설은 잘못된 일이라는 그동안의 소신을 접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제성도 원자력발전이 가장 우수하다. 지난해 국내 평균 원자력발전 단가(발전소 건설 비용 포함)는 ㎾당 38원. 석유(117원)· LNG(104원)·풍력(107원)·수력(94원)은 그 2.5~3배이고, 태양광(677원)은 무려 18배다. 원자력발전 비중이 늘수록 전기를 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같이 경제 성장에 따라 앞으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흥국들이 원전을 많이 늘리겠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의 연료인 우라늄은 매장량도 풍부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에너지기구(NEA)의 예측에 따르면 우라늄은 최소 240년, 원전 효율이 높아지면 1000년 이상 쓸 분량이 있다.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처럼 불과 수십 년 뒤에 고갈될 우려가 없는 것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세계 각국은 원전 건설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인도는 2032년까지 50여 기를 더 지을 방침이다. 87년 국민투표로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했던 이탈리아도 지난해 8~10기를 새로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세계원자력협회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원전 430기가 추가 건설될 것으로 보고 있다. 27일 청와대가 UAE 원전 수주 사실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430기, 1조 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한 근거다. 청와대는 원전 1기 건설 비용을 약 23억 달러(약 2조7000억원)로 봤다. 이번에 UAE에서 수주한 건설 비용은 기당 50억 달러로, 여기에는 원전 외에 도로 같은 인프라 건설비와 초기 3년간 연료 공급 비용 등이 포함돼 있다.

OECD NEA는 2050년까지 최대 원전 960기가 더 건립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달 15일 프랑스 파리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한 재니스 던 리 OCED NEA 사무차장은 “골칫거리였던 사용 후 핵 연료도 안전하게 영구 보관할 기술이 개발된 상태”라며 “원전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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