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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지역산업, 국가경제의 기초체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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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무선통신기기,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주요 산업들이 수출액 상위에 오르면서 큰 기여를 했다. 그중에서도 조선업은 지난해에 이어 전체 수출액 중 가장 많은 부분(약 13%)을 차지하면서 든든한 역할을 했다.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조선업의 성장 기반에는 세계 조선업의 대표적인 클러스터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울산과 거제가 있다. 조선소가 건설되기 이전 낙후된 어촌마을에 불과했지만 지역의 특성에 가장 적합한 조선업을 유치한 뒤 지역민과 기업이 끊임없이 노력해 국가경쟁력을 선도하고 있다.

지역산업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예는 얼마 전 세계 최대의 신종 플루 백신 생산 능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화순의 녹십자 백신공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백신공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성장동력을 잃은 인적이 드문 시골에 불과했다. 그런데 청정환경이라는 장점을 내세워 백신공장을 유치하면서 이제 세계적인 생명의학 클러스터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렇듯 지역을 넘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는 울산과 거제, 그리고 화순의 예는 다른 지역경제 주체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화의 급속한 진행과 함께 경제활동에서 국경선이라는 개념이 흐려졌다. 이에 따라 생산요소의 이동과 공급이 유연하고 집적 효과를 크게 발휘할 수 있는 ‘지역’이 ‘국가’를 대신한 새로운 경제활동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국가의 하위 개념으로만 인식되던 ‘지역’이, 적어도 경제 분야에서는 국가를 넘어 독립적인 단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지식경제부에서는 지역전략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2010년 지역산업진흥계획’을 발표했다. 1999년부터 추진돼 온 지역전략산업진흥사업이 그동안 각 지방의 취약한 산업기반 보강에는 크게 기여했지만, 새로운 국제 경제활동의 단위주체로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많이 미흡했다. 그러나 이제 지역전략산업을 성장동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하게 경쟁하는 ‘강한 지역’을 만드는 새로운 비전이 제시된 것이다.

이번 개편안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지역사업은 지역의 손으로 결정하게 하는 자율성 확보다. 중앙정부 시각에서 지역에 획일적으로 배분하던 ‘칸막이식’ 추진방식을, 지역 여건과 특성에 맞도록 ‘지역자율형’ 기획 방식으로 대폭 개편한 것이다. 중앙정부의 온실 속에 있던 지역이 세계와 경쟁하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일 수 있다. 하지만 거제, 울산 그리고 화순의 성공 사례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다소의 시행착오가 있을지라도 지역산업발전 전략을 스스로 세우고 꾸준히 추진해 나갈 때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강한 지역’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지역의 저력을 믿는다.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