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미란다 원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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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연방대법원이 최근 '미란다 원칙' 을 위배한 연방통합범죄방지법 제 3501조를 위헌이라고 판결한 데 이어 우리나라 대법원도 현행범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이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수사기관의 체포에 맞서 저항했다고 하더라도 공무집행 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미란다 원칙을 재확인한 것은 우리 형사절차의 수준에 대한 점검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1966년에 내려진 '미란다 판결' 은 수사단계에서 시민의 인권을 획기적으로 보장하는 원칙을 세우면서 이른바 '형사절차혁명' 을 추동(推動)한 위대한 판결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란다 원칙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매우 제한적인 것 같다.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접견권의 고지(告知)의무화가 마치 미란다 원칙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미란다 원칙의 '혁명적' 내용은 무엇일까. 미란다 원칙은 시민의 범죄혐의를 신문(訊問)하기에 앞서 수사기관에 네가지 사항에 대한 고지의무를 부과한다.

즉 시민은 묵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어떠한 진술도 시민 자신에게 반(反)해 사용할 수 없고, 수사기관의 신문시 변호인 입회권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것과 경제적 빈곤 때문에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을 경우에는 수사단계부터 무료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형사절차에서 전혀 인정되지 않고 있는 신문시 변호인 입회권의 보장과 무료변호인 선임권이다.

사실 변호인의 조력이 가장 필요한 것은 '신문 초기단계' 다. 신문 초기단계에서 변호인 입회권이 보장될 때에만 수사과정에서의 각종 인권침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 초기단계부터 변호인의 조력을 얻는 경우는 드물 뿐 아니라 우리의 '국선변호인제도' 는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후에만 한정해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미란다 원칙은 시민이 묵비권 또는 변호인 접견권을 요구하는 경우 그 즉시 모든 신문을 중단하도록 요구한다.

만약 수사기관이 미란다 원칙의 고지 후에도 피의자.피고인의 권리행사를 무시하고 자백을 획득했다면 그 자백은 자동적으로 증거능력을 잃게 돼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권위주의 체제가 종료한 이후 수차례의 개혁시도에도 불구하고 인권침해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란다 원칙, 특히 후반부의 두 가지 원칙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형사절차의 무게중심이 범인체포와 처벌쪽으로만 기울어져 시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헌법적 권리가 약화돼선 안된다.

미란다 원칙 등 형사절차에서의 인권보장을 위한 각종 제도는 단지 수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의 정당성과 우리 사회체제의 민주성을 강화하는 필수요소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조국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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