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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메들리 10~20대 팬들 몰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지난 8일 오후 3시 동대문 두산타워 빌딩 정문 앞 야외공연장. 우르르 몰려든 10~20대 젊은이들 앞에 마이크를 잡고 선 가수는 놀랍게도 40대 아저씨. 2명의 건장한 테크노 DJ 가재발의 테크노 믹싱에 곁들여 아저씨는 '나는 우주의 판타지' '영맨' '하이스쿨 록앤롤' 등의 노래를 불러제꼈다.

젊은이들은 배를 잡고 웃고 손뼉치고 발을 굴렀다. 개그쇼 분위기다. 혀를 굴려내는 '우리리리히이' 하는 소리를 흉내내는 이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이날 주인공이 바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테크노 뽕짝'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신바람 이박사. 그야말로 신(新)바람의 주역이다.

쿵짝 쿵짝 반복하는 리듬에 '호리호리' '앗싸' '우리리리히이' 추임새로 그의 노래는 영락

없는 관광버스용이었다.

'노래 반, 장난 반' 인 그의 노래는 약간은 경박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그의 인기가 뜨겁다. 팬클럽 회원이 7천명에 이른다.

이박사에 열광하는 네티즌들은 이박사 닷컴(http://www.ebaksa.com)을 만든 데 이어, 나우누리(http://www.nownuri.com), 다음넷 등에도 둥지를 틀었다.

나우누리 팬클럽은 문을 연지 한 달 만에 회원 2천명을 기록했다.

세이클럽(http://www.sayclub)이라는 채팅 사이트에서는 그의 음악만 들려주는 인터넷 방송도 있다.

최첨단 네티즌들이 갑자기 이박사 뽕짝에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다음넷 이박사 팬클럽을 운영하는 대학생 박승일(20)씨는 이박사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을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고 요약한다.

"다른 뽕짝 노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는 그는 "이박사 음악엔 뭔지 모를 마력이 있다" 고 말한다.

"팬들의 얘기는 한결같다. 재미있고, 경쾌하고, 신난다는 것이다." 이박사가 설명한 인기의

배경이다.

다른 음반사 관계자는 "재미 뿐만 아니라, 뽕짝 하나를 독창적으로 파고든 이박사의 끈기를 높이 산다" 고 말했다.

일본 음반사가 이박사의 노래에 테크노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 젊은이들에게 적중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소니뮤직 코리아의 문상혁씨는 "네티즌에게 뽕짝은 성인이 알고 있는 장르와 같은 개념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장르인 셈" 이라고 말했다.

테크노 뽕짝 바람은 이박사에서 멈추지 않았다. 테크노 뮤지션 달파란은 영화 '거짓말' 에서 이박사의 메들리곡 '청산유수' 를 샘플링한 '육체의 판타지' 를 들려줬다.

또다른 테크노뮤지션 볼빨간(달파란의 이름에 대한 오마주)은 98년 신바람 이박사의 노래를 차용해 '지루박 리믹스, 쇼!' 라는 음반을 냈다.

올해 초 인기를 모은 영화 '반칙왕' 삽입곡에도 '사각의 진혼곡' '달리기' 등엔 뽕짝 분위기가 물씬했다.

영화 '거짓말' 에서 촌스럽고 낯뜨겁게 들리는 뽕짝은 당연히 지켜야할 것 같은 '품격' 을 한순간에 허물어뜨린다. 엄숙주의에 대한 반기다.

이박사의 노래에 호응하는 심리 이면에는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 품격있는 것과 저속한 것을 나누는 관습적인 틀을 거부하는 일탈심리가 숨어 있다.

음악평론가 성기완씨는 이런 경향의 배경을 뽕짝이 갖는 역설적인 성격에서 찾는다.

뽕짝에는 친근함과 낯섦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한국 가요 스타일의 기본은 뽕짝" 이라고 말하는 그는 "테크노 뽕짝의 힘은 친근하면서도 낯선 그 특징에서 발휘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성을 중시하는 네티즌들이 떳떳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다 보니 뽕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같다" 고 덧붙였다.

또다른 평론가 송기철씨는 이박사의 매력을 '은근한 촌티' 에서 찾는다.

번득이고 정형화된 기법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단순하고 경쾌하고 솔직한 노래가 점수를 얻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송씨는 이박사의 음악성에 대해선 평가를 보류한다.

그는 "일본에서 먼저 인정받지 않았더라면 국내에서 이토록 관심을 모으지는 못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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