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수출 자격증’ 땄다 … 50년 원전사 새로 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1959년 1월 원자력 개발을 위한 정부부처인 원자력원이 설립됐다. 50년이 지난 2009년 12월 27일 한국은 마침내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수주하며 원전 플랜트 수출국 반열에 올랐다. 건설(도로 등 기반시설 포함)과 초기 3년치 연료 공급 수주 금액만 200억 달러(약 23조5000억원). 여기에 건설 후 60년간 원전을 한국이 운영하면서 연료 수출 등으로 200억 달러를 더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된다. 쏘나타 승용차 200만 대,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360척을 수출한 것과 맞먹는 규모다. 정부 내에서는 “마침내 또 하나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UAE 원전 수주의 의미와 전망을 3회 시리즈로 짚어본다.

“한국 원자력 역사 50년 만의 쾌거다. 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로 한국은 국제 원전 플랜트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

김영학 지식경제부 차관은 27일 오후 정부 과천청사에서 UAE 원전 수주 소식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200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수주 금액보다 오히려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원전 수주는 다음번 해외 원전 입찰에 참여할 든든한 ‘자격증’을 땄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한국은 2004년부터 해외 원전 수주에 도전했다. 그해 중국, 200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2008년 캐나다 원전 건설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과는 3전3패. ‘본선’이라 할 입찰에는 참여하지도 못하고, 번번이 사전 자격심사에서 탈락했다. 입사 시험으로 치면 1차 면접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서류 전형에서 떨어진 셈이다.

해외 사업 실적이 없는 게 문제였다. 국내 원전 운영을 통해 기술력과 안전성은 검증됐으나 ‘국제 인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UAE 원전을 수주하면서 한국은 국제 사회에 내밀 해외 사업 실적을 쌓게 됐다. 정부가 “원전 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보는 이유다.

정부는 이번 원전 수주를 발판으로 제2, 제3의 해외 사업을 따내 원전 플랜트 수출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다. 원전이 워낙 큰 시장이어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원전은 1기만 수주해도 금액이 어마어마하다. 이번에 UAE에서 따낸 것이 기당 50억 달러(5조8500억원). 초호화 여객기라는 에어버스사의 A380 항공기 대당 가격(3억2000만 달러)의 15배가 넘는다. 시장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이산화탄소(CO2)를 뿜지 않는 원자력 발전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발전 비용이 석유나 액화천연가스(LNG)는 물론 석탄보다 훨씬 싸다는 것도 장점이다. 중국·인도 등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폭발하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것은 원자력밖에 없다는 관측도 있다. 석유 같은 화석연료는 수십 년 안에 고갈될 것이고, 수력·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증가세에 한계가 있다.

이런 점들로 인해 세계원자력협회는 2030년까지 원전 430기가 더 지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20년간 현재 가동 중인 만큼(432기)의 원전이 더 생긴다는 관측이다. 1조 달러가 넘는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프랑스·일본 등 세계 각국은 원전 수주에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다.

원전 기술뿐 아니라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번 UAE 원전 수주를 놓고서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올 5월 UAE를 방문하는 등 각국이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무기 수출보다 더한 각축전이 벌어지는 곳이 원전 시장이란 얘기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단군 이래 최대의 무기 도입이라는 한국의 차기 전투기(FX) 사업 규모가 5조6000억원으로 이번 UAE 수주 금액의 4분의 1 정도다.

지금까지 해외 원전 건설은 미국·프랑스·일본·러시아·캐나다 5개국만의 각축장이었다. 그러나 이번 UAE를 계기로 한국이 가세하게 됐다. 한국으로서는 원전 플랜트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지만 다른 나라의 견제도 한층 심해질 전망이다. 김영학 차관은 “한국 원전의 기술·안전성·가격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이번 발표 막바지에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현지를 찾아 지원 외교를 했던 것처럼 총력전을 펼치면 앞으로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