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계에 무협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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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자주색 망토 위로 치렁치렁 까만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무사. 양 어깨에 달린 장검을 뽑아 내리치니 땅이 일직선으로 갈린다.

뿌옇게 날리는 먼지 구름 위로 불현듯 '쉬익' 허공을 가르며 칼잡이들이 등장하고, '칭, 챙' 금속성 칼 부딪히는 소리가 달 밝은 밤의 적요함을 깬다.

대중문화계에 '칼바람' 이 거세다. 영화에서는 지난 주말 개봉해 전국에서 30여만명을 끌어 들인 '비천무' 를 비롯해 '은행나무 침대' 의 속편인 '단적비연수' 가 막바지 촬영 중이고 '비트' '태양은 없다' 의 김성수 감독은 중국에서 '무사' 를 찍으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영화 뿐 아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김성수 감독의 '일월지애' 가 이미 대단한 화제를 뿌렸고 조성모 '가시나무' 의 뮤직비디오는 중국 무사는 아니지만 일본의 야쿠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만화에서는 '용비불패' '열혈강호' 가 1백만부가 넘는 공전의 판매고를 올렸다.

도대체 왜 '무협' 인가. 첨단 테크놀러지가 그물망처럼 깔린 정보통신시대에 왜 원시적인 '칼' 이 대중적인 호소력을 갖는가.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30년 전 지식인 사회에까지 밀려든 무협소설 붐을 진지하게 성찰한 적이 있다.

'무협소설은 왜 읽히는가' 라는 그의 문제의식은 당시 김광주(金光洲)의 '정협지' '흑룡전' '호유기' 나 와룡생(臥龍生)의 '비룡' '비연' 등이 본격적으로 번역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끈데서 출발했다.

무림의 청년이 복수의 염을 품고 내공을 쌓은 뒤 마두(魔頭.악당)를 처치하게 된다는 단순하고 상투적인 이야기의 반복인 '싸구려' 소설이 왜 '배운 사람들' 까지 매료하는 것일까. 그는 무협소설의 인기가 비개성적 허무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개인은 점점 무력감을 느끼게 되며 이러한 현대인의 불안과 초조가 무협소설에서 고수들이 펼치는 상투적인 틀에 안주하도록 유혹한다는 것이다.

7, 8년전 특수효과를 가미한 무협영화 '천녀유혼' 과 '황비홍' 시리즈가 극장가를 휩쓸 무렵 '무림일기' 의 시인 유하는 김현의 글을 이어 받아 '무협영화는 왜 보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그는 홍콩의 무협영화는 무술 자체가 갖는 게임적.놀이적 성격 만을 극대화했으며 이를 위해 신체의 훼손까지도 페스티벌화한다고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비천무' 에서 사람의 목이 나뒹구는 장면이나 여주인공이 손가락을 절단하는 '가시나무' 의 뮤지비디오 등 요즘의 무협 붐에도 적용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대중문화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무술의 오락화' 경향에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문화평론가 이성욱은 수용자 층의 변화를 눈여겨 볼 것을 요구한다. "30대만해도 오락성보다 리얼리티에 비중을 두고 영화를 고른다. 10대나 20대는 다르다. '비천무' 는 국적이 모호해 이전 같으면 관객으로부터 비난을 받았을 게다. 그러나 지금은 흠이 안 된다.

이야기에 무게를 두기 보다 머리 칼을 날리며 멋진 폼으로 칼을 휘두르는 인물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또 무협지에서 소재를 끌어오는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고 해석했다.

김현은 "무협은 일종의 환각제다. 그렇다면 개인이 소멸된 이 비개성적인 세계에서 벗어나기위해 계속 무협소설을 읽을 수 밖에 없는가" 라며 답답증을 호소했었다.

그의 고민은 오늘 이미지에만 열광하는 대중문화의 공급자와 수용자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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