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 중앙은행들, 호주에서 배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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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호 30면

호주 중앙은행(RBA)은 올 10월부터 매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렸다(현재 연 3.75%).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저금리 정책 공조를 통해 경기 부양에 매달렸다. 호주는 이런 흐름에 처음으로 ‘반대 의견’을 낸 셈이다.

세계 14위 경제대국 호주가 출구전략을 시행하면서 글렌 스티븐스 RBA 총재가 주목받고 있다. 호주의 금리 인상은 중국이나 인도·인도네시아·한국·대만같이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상대적으로 덜 흔들렸던 국가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출구전략 로드맵이 될 수 있어서다. 그렇지 않으면 자산 버블이 인플레이션을 야기해 내년 경제를 ‘불필요하게’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과연 어떤 행동이 필요한가. 이코노미스트들은 저금리 정책으로 버블을 만들어 경제 회생을 바라는 시도를 ‘버블 해결책(bubble fix)’이라고 꼬집는다. 버블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치적으론 적절할 수 있겠으나 경제에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버블에 의한 성장은 속이 텅 빈 공허한 성장에 불과하다.

1980년대 이후 월가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 시기 월가는 오로지 확대 경쟁을 벌였다. 리스크 관리와 레버리지(차입을 통한 투자)는 이런 금융 시스템의 근간이었다. 이들은 부(富)를 새롭게 창조하기보다는 경영하려고 했다.

운이 좋게도 아시아는 이런 극단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었다. 아시아의 금융 시스템은 중독성 채무와 월권 거래에 굴복하지 않았다. 보수주의적 경영이 이들 국가를 살린 셈이다. 다만 최근 글로벌 위기 이후 자산 가격이 비정상적 저금리에 의해 부풀려질 수 있다. 지금은 이런 과잉 유동성 상태를 제자리로 돌려야 하는 시기다. 스티븐스 총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올해의 인물’로 꼽았다. 이제껏 중앙은행 총재가 시사지 표지를 장식한 적은 없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인 대다수는 연준이 무슨 일을 하는 기관인지 몰랐다. 연준 총재도 ‘정체불명의 인물’이었다. 물론 전혀 섹시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나 캐머런 디아즈처럼 피플 잡지를 장식하는 유명인이 됐다. 불과 15년 만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변화는 버블의 꾸준한 증가를 반영한다. 금융 시스템이 비대해지면서 중앙은행이 내놓는 정책이 중요해졌다. 투자자들은 중앙은행에 의존하게 됐다. 이런 기대에서 도덕적 해이가 만들어졌고 물론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서 스티븐스 사례가 중요하다. 그가 이끄는 RBA는 올해 기준금리를 올린 세계 첫 메이저 중앙은행이다. RBA가 금리를 올리자 시중은행이 동조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폭보다 더 많이 금리를 올렸다고 정부의 비난을 받고 있을 정도다. 어쨌든 호주 금융가는 ‘RBA의 길’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스티븐스 총재는 “2009년은 2008년에 비해 재미가 덜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지루할 정도는 아니었다”며 경계감을 늦추지도 않았지만 호주에서 2010년은 사건 없이 평온 무사한 해가 될 듯하다. 이것은 또한 아시아 중앙은행이 벤치마킹해야 할 정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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