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장수하려면 기후 변화에 적응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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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호 30면

『살아 있는 기업』의 저자 호이스(Arie de Geus)는 1970년대 ‘포춘 500대 기업’ 중 장수 기업의 특징을 정리했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 중 하나가 경영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그후 진행된 여러 연구에서도 지속 가능 기업의 필수조건이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한 신속하고도 적절한 대응이란 점이 입증됐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주목해야 하는 중대한 경영환경 변화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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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인류사의 이슈 중 압권은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다. 학문적 관점에서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된 것은 수십 년 전부터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인류 생활 전반에 걸쳐 다른 모든 이슈를 압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일부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화를 이끌어낸 교토 의정서에 이어 2007년 유엔 산하 국제협의체인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 4차 보고서는 기후 변화에 대한 기업의 본격 대응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 코펜하겐에서 막을 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계기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활동이 본격화할 것임은 분명하다. 기후 변화는 인간의 인위적 영향 탓이 아니라는 일부 반론이 있기는 하나 이 문제는 이미 논쟁의 단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종합하면 21세기 기업이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경영환경 변화는 기후 변화에 따른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경영환경에 영향을 미쳤던 변화요인들은 필연적으로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최근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만 해도 그렇다. 애플은 휴대전화에 대한 대중의 요구사항을 제조사 차원에서 규정하지 않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기능을 달리 구성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뛰어난 디자인 감각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공 포인트이긴 하지만 다양한 고객들의 요구를 담으려 한 시도가 대박으로 이어졌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21세기는 몰개성의 대량생산에 일찌감치 조종을 울렸다. 개개의 수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제품과 서비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이 시대가 주는 교훈이다.

기후 변화 이슈도 마찬가지다. 기후 변화는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제품의 전 과정(lifecycle)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기업과 그 제품이 경쟁력을 갖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는 제조업을 넘어 서비스 등 경제활동 전 영역에 걸쳐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파급력을 행사할 것이다. 기후 변화 이슈를 단순히 환경이나 규제의 관점에 국한하려는 시도가 적어도 기업경영에 있어 대단히 위험천만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이 견지했던 태도, 즉 환경규제 회피라는 시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단견에 불과하다.

기업경영 차원에서 기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존 디어(John Deere)’는 농업용 트랙터를 만드는 회사다. 미국은 물론 세계시장을 장악한 이 부문에서 선도 기업이지만 농기계 제조만으로는 지속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회사는 에너지와 기후 변화를 향후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중대변수로 받아들였다. 지역농민과 연계한 풍력발전을 신사업으로 개척했다. 농민들이 갖고 있는 땅에 풍력발전 설비를 갖추고 전기를 생산해 판매하는 모델이었다. 프로젝트 한 건당 평균 1000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 걸림돌이었지만 신재생에너지 개발사업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밀어붙였다. 전기판매 수익을 공유하는 조건으로 금융회사와 투자자를 끌어들여 필요자금을 충당하고 부지는 농민들로부터 제공받았다. 사업모델을 구상하고 초기자금 일부를 투자한 존 디어 역시 짭짤한 수익을 냈다. 이 회사가 갖고 있던 농민들과의 돈독한 신뢰 관계가 사업의 동력이었으며, 높은 전기요금과 세제 혜택이 사업성을 높였다.

기후 변화와 그에 수반되는 다양한 조류는 당장은 경영에 부담일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기업의 대응은 업종별로 달라질 수 있다. 정유·석유화학·철강·시멘트 등 상대적으로 에너지 사용이 많은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 활동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기업의 비용절감은 물론 직접적인 수익 증대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절감 및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도입하고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에 참여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반면 기후 변화를 신사업의 계기로 삼는 게 바람직한 업종도 있다. 에너지 사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의류·식음료·건설·유통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구체적으로는 존 디어 사례와 같이 신규사업에 나서거나 녹색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활동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애플의 대표이사였던 존 스컬리는 “미래는 가능성이 현실이 되기 전에 알아채는 사람의 것”이라고 했다. 기후 변화의 영향과 그에 따른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미 우리 생활의 전 부문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변혁의 흐름이 굳어지기 전에 녹색 성장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변혁에 대비하는 기업만이 장수 기업의 미래를 선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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