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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 임차권 불법 거래 권익위 “수사 요청 하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인천시에 사는 A씨는 올 1월 한국토지주택공사(구 대한주택공사)로부터 공공임대아파트 임차권을 양도해도 된다는 승인을 받았다. 충북 진천군에 고물상을 개업한 것처럼 가짜 사업자 등록증과 부동산임대차계약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서민무주택자가 적은 비용으로 집을 마련하도록 돕는 제도인 공공임대주택은 원칙적으로 임차권 양도가 금지돼 있다. 하지만 생업과 질병치료 등을 위해 다른 행정구역으로 이사할 경우엔 예외적으로 양도가 허용된다. A씨는 이런 점을 악용한 것이다.

경기도 포천에 거주하는 B씨도 임대주택 양도 승인을 받기 위해 이미 폐업한 동두천 소재 회사에 근무하는 것처럼 가짜 재직증명서와 건강보험증을 만들어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업자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공공임대아파트 임차권을 불법으로 양도하는 행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이재오)가 인천과 경기도 동두천·포천·화성 등 수도권 4개 지역에서 최근 양도 승인이 난 공공임대아파트 296가구 중 무작위로 67가구를 조사한 결과 79%인 54가구가 임차권을 불법 거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24일 밝혔다.

권익위는 특히 “토지주택공사의 양도 담당직원은 양도승인서 백지에 관인을 날인해 부동산업자에게 제공했으며, 또 다른 직원은 양도 승인과 관련해 부동산업자에게 향응을 제공받은 의혹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조사 지역 주변 부동산업자들은 재직증명서·사업자 등록증·건강보험증 등 서류를 허위로 만들어 주고 100만~500만원의 수수료를 챙기는 등 공공주택 임차권 불법 양도 알선을 조장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불법으로 임대주택을 양도한 54가구는 다른 지역의 직장에 취업하거나 사업장을 개설한 것처럼 속여 임차권 양도 승인을 받은 뒤 다른 이들에게 5000만∼1억4000만원의 ‘웃돈’을 받고 넘겼다.

권익위는 “가구당 평균 프리미엄이 8800만원으로 총 47억6000만원의 부당이득이 발생한 것 같다”며 “79%의 양도 비율을 감안하면 4개 지역의 총 불법 양도 프리미엄 규모는 약 500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권익위는 국토해양부에 개인 간 공공임대주택 양도 행위를 제한하고 자격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을 앞서 권고했으나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권익위 측은 “오히려 불법양도를 엄격히 심사해야 할 토지주택공사 직원까지 합세해 임차권 불법양도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라며 “제도상 문제점을 해당 기관이 개선하도록 요청하겠다”고 했다. 또 확인된 위법 사항에 대해선 수사기관에 통보, 수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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